박가분(朴家粉)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에 상표 등록되어 판매된 화장품으로, 공산품으로서 제작·판매된 한국 최초의 화장품이다.
개요
- 종류: 화장품 (백분, 즉 얼굴에 바르는 하얀 가루)
- 발명자: 정정숙 (박승직의 부인)
- 제조업체: 정정숙의 가내 수공업 → 이후 박승직상점
- 생산 기간: 1920년 ~ 1937년
- 주 성분: 납 화합물인 백연(lead carbonate)
역사
초창기
두산그룹의 창업주인 박승직(1864~1950)은 서울 종로4가 배오개에서 포목을 취급하는 박승직상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의 부인 정정숙이 입정동에서 한 노파가 백분을 직접 만들어 파는 모습을 보고 부업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남편과 상의한 후 십여 명의 아낙네를 모아 백분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때 재래 방식인 납 성분을 넣어 부착력을 높이는 방법을 사용했다.
납분(鉛粉)은 납 조각을 식초로 처리하여 밀봉한 뒤 열을 가해 만든다. 납 조각 표면에 백연(하얀 가루)이 돋아나는데 이를 '납꽃'이라 불렀고, 여기에 조갯가루, 칡가루, 쌀가루, 보릿가루를 섞어 완성했다.
전성기
박가분은 큰 인기를 끌어 전국에서 방물장수들이 몰려들었다. 1920년 상표 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으며, 하루 1만 갑 이상을 판매하는 기업체로 성장했다. 가격은 1갑에 50전이었다.
인기 비결은 당시 다른 백분이 얇은 골패짝 모양(두께 약 3mm)으로 종이에 싸서 팔린 데 비해, 박가분은 두께가 약 8mm로 훨씬 두꺼웠고 인쇄 라벨을 붙인 상자에 담아 판매한 포장 방식 덕분이었다.
쇠퇴
1930년대 이후 서가분(徐家粉), 장가분(張家粉) 같은 유사품과 일본제(왜분), 중국제(청분) 등 외래품이 들어오면서 경쟁이 심화되었다. 결정적으로 납 성분이 피부에 해롭다는 소문이 퍼졌고, 1934년에는 한 기생이 박가분 사용 후 얼굴을 망쳤다며 고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박승직은 1935년 일본 기술자 현종식을 초빙해 제조 방식을 바꾸었으나, 결국 1937년 생산을 중단하고 시장에서 사라졌다.
유산
박가분을 판매했던 박승직상점은 이후 두산그룹으로 성장했다. 옛 두산유리(현 테크팩솔루션)의 유리제품 브랜드 '파카 크리스탈(Parka Crystal)'의 '파카'는 박가분의 '박가(朴家)'를 영문으로 표기한 것에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