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빈(朴勝彬, 1880 ~ 1943)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법률가·교육자·국어학자·사회운동가이다. ‘학범(學凡)’이라는 호로도 알려져 있다.
생애
| 연도 | 내용 |
|---|---|
| 1880 | 강원도 철원(현 강원특별자치도)에서 출생 |
| 1907 | 일본 도쿄에 있는 주오대학(주오 대학) 법학과를 졸업 |
| 1908 | 귀국 후 검사로 근무 |
| 1909 | 변호사 등록·개업 |
| 1910 ~ 1920년대 | 계명구락부(계명구락부) 창립·활동에 참여 |
| 1925 ~ 1932 | 보성전문학교 교장 역임 |
| 1931 | 조선어학연구회(조선어학연구회)를 조직하고 학술지 <정음>을 발간, 조선어학회와 대립 |
| 1933 ~ 1934 | 조선축구협회 초대 회장(1933~1934) |
| 1943 | 사망(구체적 사망지와 사인에 대한 기록은 제한적) |
주요 활동
- 법조인: 검사·변호사로서 일제하 조선의 법제 개혁 및 형사 사법 분야에 참여하였다.
- 교육: 보성전문학교(보성전문학교)의 교장으로 재임하면서 근대 교육 확대에 기여했다.
- 언어학·문화운동: 1931년 조선어학연구회를 조직하고, <정음> 등 여러 언어·문화 잡지를 발간하였다. 특히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반대하며, 전통 한글 표기의 보존과 통일을 주장하였다.
- 체육: 1933년 조선축구협회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으로 활동, 한국 축구 발전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 저술: 《조선어학강의요지》, 《조선어학》, 《조선어학회사정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대한 비판》, 《간이조선어문법》 등 언어학·교육 관련 저서를 남겼다.
사후 평판
박승빈은 일제강점기 조선 지식인 중 하나로, 법률·교육·언어·체육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 인물로 평가된다. 특히 국어학자로서의 연구와 교육 행정가로서의 업적은 한국 근현대 사학·언어학 연구에서 참고 자료가 된다. 다만 그의 사생활·가족·사망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현재까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전기적 세부 사항은 제한적이다.
※ 본 항목은 위키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두산백과 등 신뢰할 수 있는 사전 자료에 근거한 내용이며, 확인되지 않은 사항은 포함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