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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충

박상충(朴尙衷, 1332년~1375년)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자(字)는 성부(誠夫)이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밀직부사 박수(朴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아들은 조선 초기 좌의정을 지낸 박은(朴訔)이다.

1353년(공민왕 2) 이제현과 홍언박이 주관한 과거에 이색·정추 등과 함께 급제하였고, 이후 예조정랑(禮曹正郞)에 올랐다. 당시 국가 제사에 관한 기록이 없어 착오가 많았는데, 박상충은 옛 의례를 참고하여 순서대로 조목을 정리한 사전(祀典)을 직접 작성하여 후임자들이 근거로 삼을 수 있게 하였다.

1367년(공민왕 16) 성균관 생원의 수를 100인으로 늘리고 오경사서재(五經四書齋)를 마련할 때, 김구용·정몽주·박의중·이숭인 등과 함께 경전과 문장 작성을 가르치는 교관을 겸하였다. 뒤에 전교령(典校令)이 되었으며, 어머니 상을 당했을 때 당시 사대부들이 부모상에 100일만 복을 입는 관행을 따르는 대신 3년간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1375년(우왕 1) 이인임 등이 북원(北元)과 국교를 맺으려 하자, 임박·정도전 등과 함께 이를 반대하고 친명 외교(親明外交)를 주장하였다.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가 되어 정몽주 등과 함께 북원 사신과 수행원을 포박하여 명나라로 보낼 것을 상서하였다. 같은 해 간관 이첨·전백영 등이 이인임과 지윤의 주살을 주장한 상소에 연좌되어, 전녹생·정몽주·김구용·이숭인·염흥방 등 친명파 인사들과 함께 귀양 가던 도중 사망하였다. 향년 44세.

성품은 말이 적고 강개(慷慨)하였으며, 경전과 역사에 해박하고 글을 잘 지었고 성명학(星命學)에도 통달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왕조에서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의 반계서원(潘溪書院),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의 구호서원(龜湖書院), 개성의 오관서원(五冠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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