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영은 한국어의 인명(人名)으로, 실명(實名)으로서 다양한 역사적·현대적 인물들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한자 표기와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인물을 지칭하므로, 어떤 박노영을 가리키는지에 따라 그 내용이 크게 달라진다.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확인된 주요 동명이인(同名異人)은 다음과 같다.
1. 박노영(朴魯榮, 1930~2012)
대한민국의 군인 겸 외교관, 정치인이다.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주에서 출생하였으며, 1949년 대한민국 육군에 복무를 시작하여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다. 육군 대장으로 진급하여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역임하였고, 1961년부터 1963년까지 군정관선(軍政官選) 강원도 원주시장을 지냈다. 예편 이후에는 주타이완(중화민국) 대사(1991~1992)와 주로마 교황청 대사(1993~1995)를 역임한 외교관으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2. 박노영(朴魯英, 1897년 또는 1899년 ~ 1976년)
한국계 미국인 활동가이자 작가, 강연가이다. 본명은 박정선(朴正善)으로, 경상남도 남해에서 출생하여 어린 시절 통도사에서 불교 승려로 수학한 뒤 서울로 상경하였다.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하다가 일제의 추적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중국인으로 자처하며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1932년)를 취득하였고,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초창기 한국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후 미국 각지에서 아시아 문제에 관한 강연과 저술 활동으로 명성을 얻었다. 본인이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주장하였으나, 후대의 연구를 통해 한국인 출신이었음이 밝혀졌다.
3. 박노영(朴老英, 1900~1945)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이다. 함경북도 부령군 출신으로,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여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상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하여 활동하였고, 조선공산당 및 고려공산청년회 함북도부 결성에 관여하였다. '함북공산당 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며, 출옥 후 용정에서 교사로 활동하다가 1945년 해방 직후 사망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4. 박노영(朴魯榮, 1831~ ?)
조선 후기의 역관(譯官)이다. 자는 성문(聖文)이며, 본관은 영해(寧海)이다. 1864년(고종 1년) 증광시 역과(譯科)에 합격하여 직장(直長) 관직을 지냈다. 전공은 한학(漢學)이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역과방목(譯科榜目) 기록에 등재되어 있다.
5. 기타
이 외에도 현대에 활동한 대한민국 군인 출신 인물(별도의 나무위키 항목으로 등재됨), 변호사, 그리고 현재 활동 중인 일반인(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 운영자) 등 다수의 동명이인이 존재한다.
이상과 같이 '박노영'은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흔한 이름으로, 특정한 단일 개념이 아니라 다양한 시대와 분야에서 활동한 여러 인물들을 지칭하는 인명이다. 해당 이름이 특정한 인물을 가리킬 때에는 문맥과 추가 정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