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웅(朴健雄, 1900년 10월 28일 ~ 1941년 9월 1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며 무장 독립투쟁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만주 지역에서 조선혁명군에 합류하여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생애 초반 평안남도 용강군(현 남포시) 출신으로, 청년 시절 일제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할 뜻을 품었다. 1920년대 초 상하이로 망명하여 본격적인 독립운동 활동을 시작했다.
독립운동 활동 박건웅은 1920년대 초 김원봉이 이끌던 의열단에 가입하여 핵심 단원으로 활동했다.
- 의열단 활동: 1922년 5월, 일제 주요 기관 폭파를 목적으로 국내에 잠입했다. 조선총독부 폭파 계획을 추진했으나, 거사 직전 일경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그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 만주에서의 활동: 출옥 후에도 독립운동의 뜻을 굽히지 않고 1930년대 초 만주로 건너갔다. 그는 만주 지역에서 양세봉 장군이 이끌던 조선혁명군에 합류하여 활동을 이어갔다. 주로 정보 수집, 연락, 군자금 모집 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만주 지역 한인 독립운동 조직들의 연대와 투쟁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망 1941년 9월 1일, 만주에서 일본 밀정 또는 친일 세력에 의해 암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죽음은 당시 독립운동가들에게 큰 안타까움을 주었다.
사후 평가 및 서훈 대한민국 정부는 박건웅의 공훈을 기려 1982년 독립유공자로 지정하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