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스타 스포르차(Battista Sforza, 1446년 ~ 1472년 7월 6일 또는 7일)는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귀족 여성으로, 우르비노 공작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의 둘째 부인이자 우르비노 공작부인이다. 그녀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대표작 중 하나인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우르비노 공작 부부》 이중 초상화(diptych)에 등장하는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출생과 가문
바티스타는 1446년 페사로(Pesaro)에서 페사로의 군주 알레산드로 스포르차(Alessandro Sforza)와 코스탄차 다 바라노(Costanza da Varano) 사이에서 태어난 첫 번째 적출 자녀이다. 그녀의 어머니 코스탄차는 1447년 둘째 아이인 코스탄초(Costanzo)를 낳은 직후 사망했으며, 당시 바티스타는 생후 18개월이었다. 어머니 사후 바티스타와 형제, 그리고 서출 자매들은 친삼촌인 프란체스코 스포르차(Francesco Sforza)와 그의 아내 비안카 마리아 비스콘티(Bianca Maria Visconti)의 궁정에서 자랐다.
교육과 학식
바티스타는 스포르차 가문의 인문주의 교육 전통에 따라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능통했으며, 4세 때 처음으로 라틴어 공개 연설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라틴어 수사학에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으며, 교황 비오 2세 앞에서 연설을 한 기록도 있다. 시인 조반니 산티(Giovanni Santi)는 그녀를 "희기하고 천부적인 덕과 모든 은총을 지닌 아가씨"라고 묘사하였다.
결혼과 우르비노에서의 활동
바티스타는 삼촌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의 주선으로 자신보다 24세 연상인 우르비노 공작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와 1460년 2월 8일, 14세의 나이에 결혼하였다. 그녀는 남편이 우르비노를 비울 때 섭정으로 활동했으며, 남편과 정치적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우르비노 외부의 공식 행사에 대부분 동행하였다. 동시대인 발디(Baldi)는 두 사람을 "두 개의 영혼이 깃든 육체"라고 묘사했으며, 페데리코는 바티스타를 "내 공적이고 사적인 시간 모두의 기쁨"이라고 부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자녀와 사망
바티스타는 여섯 명의 딸을 낳은 후, 1472년 1월 24일 첫 아들이자 후계자인 구이도발도 다 몬테펠트로(Guidobaldo da Montefeltro)를 출산하였다. 그러나 아들을 낳은 지 약 3개월 후, 이전 임신과 산후 회복 과정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병에 걸려 1472년 7월 구비오(Gubbio)에서 사망하였다. 향년 25~26세였다.
미술사적 의의
바티스타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1472~1475년경 제작한 《우르비노 공작 부부》 이중 초상화에서 남편 페데리코와 함께 정면 프로필로 묘사되어 있으며, 이 작품은 현재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초상화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가장 유명한 초상화 중 하나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