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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시반도

바카시반도(Bakassi)는 아프리카 서부 기니만(Gulf of Guinea)에 위치한 반도이다. 비아프라만(Bight of Biafra) 서쪽, 나이지리아 칼라바르(Calabar) 근처의 크로스강(Cross River) 어귀와 동쪽의 리우델레이(Rio del Rey) 어귀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북위 4°25′~5°10′, 동경 8°20′~9°08′에 걸쳐 있으며, 면적은 약 665km²이다. 대부분 해발이 낮은 지형으로 맹그로브 숲이 덮인 여러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지리와 경제

바카시반도는 기니만 최동단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흐르는 기니 해류(Guinea Current)와 북쪽으로 흐르는 벵겔라 해류(Benguela Current)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이 두 해류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거품이 많은 큰 파도가 해안으로 밀려오며, 이 과정에서 어패류가 풍부한 사주(砂洲)가 형성되어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한다. 바카시반도는 흔히 '석유가 풍부한 지역'으로 묘사되나, 실제로 상업적으로 채굴 가능한 유전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인근 나이지리아에서 고급 원유가 발견된 이후 다수의 다국적 석유 기업이 탐사에 참여하였으며, 2012년 10월 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Sinopec)가 바카시 지역에서 새로운 석유 및 가스 자원을 발견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인구

바카시반도의 인구는 15만 명에서 30만 명 사이로 추정되며, 주로 나이지리아의 오론족(Oron people), 크로스리버주(Cross River State) 및 아콰이봄주(Akwa Ibom State) 출신의 주민들이 거주한다.

영토 분쟁의 역사

바카시반도는 나이지리아와 카메룬 간의 오랜 영토 분쟁 지역이었다. 1884년 영국이 칼라바르 지역의 왕 및 추장들과 보호 조약(Treaty of Protection)을 체결하면서 바카시를 포함한 지역이 영국의 실질적 통제 아래 들어갔다. 이후 1913년 영국과 독일 간의 조약이 이 지역의 세력권을 규정하였으며, 이 조약은 이후 국제사법재판소(ICJ) 판결의 주요 근거가 되었다.

1961년 남카메룬(Southern Cameroons)이 나이지리아를 떠나 카메룬에 편입된 이후에도 바카시반도는 나이지리아 칼라바르 행정구역에 남아 있었다. 1981년에는 양국이 바카시반도와 차드호(Lake Chad) 지역을 두고 전쟁 직전까지 갔으며, 1990년대 초에도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이에 카메룬은 1994년 3월 29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였다.

국제사법재판소(ICJ) 판결

2002년 10월 10일, ICJ는 영국-독일 간 협정을 주요 근거로 바카시반도에 대한 주권이 카메룬에 있다고 판결하였다. 재판소는 나이지리아에 대해 반도에 대한 통치권을 카메룬에 이양할 것을 명령하였으나, 주민들의 이주나 국적 변경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이 판결은 나이지리아 내에서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나이지리아 상원은 2007년 11월 22일 해당 지역 양도가 1999년 헌법 제12조(1)항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그린트리 협정(Greentree Agreement)을 거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8월 14일을 기해 바카시반도는 완전히 카메룬에 이양되었다.

현황

현재 바카시반도는 카메룬 남서부 지역(South West Region)에 속해 있으며, 카메룬의 행정 통치 아래 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 헌법 제1부칙 제1조에는 여전히 바카시가 나이지리아의 774개 지방정부 중 하나로 명시되어 있으며, 나이지리아 국회에도 칼라바르-남부/아크파부요/바카시 연방 선거구가 존속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에도 비아프라 분리주의 단체(특히 Biafra Nations League)가 바카시를 둘러싸고 카메룬에 대한 저강도 무장 저항을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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