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축 학살(Ba Chúc massacre)은 1978년 4월 18일부터 4월 30일까지 캄푸치아 혁명군(크메르 루주)이 베트남 안장성(An Giang) 바축(Ba Chúc) 마을에서 민간인 3,157명을 집단 살해한 사건이다. 이 학살은 크메르 루주 정권 하에서 자행된 캄보디아 집단학살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했으며, 캄보디아 내 반베트남 감정과 크메르 민족주의에 기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배경
베트남 전쟁 시기 동안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세력은 동맹 관계를 유지했으나, 크메르 루주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 관계는 급속히 악화되었다. 크메르 루주 지도부는 베트남에서 훈련받은 인력을 숙청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베트남 영토에 대한 군사적 도발을 지속했다. 1975년부터 크메르 루주 군대는 푸꾸옥섬, 토쭈섬 등 베트남 영토를 여러 차례 침공하여 민간인을 살해하였고, 1977년에는 안장성, 끼엔장성, 떠이닌성 등에서 잇따라 국경 침략과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학살 경과
1978년 4월 18일, 캄푸치아 혁명군은 베트남 국경을 넘어 국경에서 약 6.4km 떨어진 바축 마을을 포위하고 모든 진입로를 차단했다. 크메르 루주 병사들은 가옥을 수색하여 귀중품을 약탈하고 가축을 죽인 뒤 주택에 불을 질렀다. 마을 주민들은 학교와 사원으로 끌려가 총살, 참수, 몽둥이 구타 등의 방식으로 살해당했다. 아기들은 공중으로 던져진 뒤 총검에 찔렸고, 여성들은 강간당한 후 성기에 말뚝이 박혀 사망했다.
많은 주민들이 탐부(Tam Bô) 불탑과 필라이(Phirây) 사원으로 피신했으나, 크메르 루주는 이곳을 포위하고 총격을 가해 약 80명을 살해했다. 탐부 불탑에서는 약 800명이 건물 밖으로 끌려나와 집단 처형되었다. 마을을 벗어나 인근 동굴로 피신한 주민들 역시 크메르 루주가 추적견을 이용해 추적한 후 수류탄 투척과 사격으로 살해당했다.
4월 30일, 베트남군이 도착하기 전에 크메르 루주는 마을에서 철수했으며, 퇴각 과정에서 추가 사상자를 발생시킨 지뢰를 남겼다. 학살 기간 동안 총 3,157명의 민간인이 사망했으며, 생존자는 단 2명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파
이 학살은 같은 해 말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하여 크메르 루주 정권을 전복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78년 12월 7일, 베트남 공산당 정치국과 중앙 군사위원회는 캄푸치아 혁명군에 대한 전면전을 결정했으며, 베트남 인민군은 2주 만에 크메르 루주를 격파하고 1979년 1월 7일 프놈펜을 점령하여 폴 포트 정권을 붕괴시켰다.
추모와 기념
전쟁 직후인 1979년, 안장성 정부는 바축에 희생자들을 위한 묘지를 건설했다. 묘지와 학살 현장으로 사용된 두 사원은 국가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2011년에는 안장성이 희생자 묘지 재건을 위해 300억 베트남 동을 할당했다. 기념관 내 매장실에는 수습되지 않은 학살 희생자 1,159명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으며, 이중 1,017개의 두개골은 연령 및 성별에 따라 분류되어 전시되어 있다. 매년 음력 3월 15일과 16일에는 희생자들을 위한 집단 추모제가 거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