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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깁슨

바이올렛 깁슨(Violet Gibson, 1876년 8월 31일 ~ 1956년 5월 2일)은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여성으로, 1926년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를 암살하려 시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생애 초기

바이올렛 앨번 깁슨(Violet Albina Gibson)은 1876년 8월 31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일랜드의 변호사이자 정치인인 에드워드 깁슨으로, 1885년 애슈번 남작(Baron Ashbourne)으로 작위를 받았다. 어머니 프랜시스는 기독교과학(Christian Science) 신자였다. 깁슨은 신지학(神智學, Theosophy)을 탐구하다가 1902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가족의 반대를 샀다. 빅토리아 여왕 시절 궁정에 데뷔한 적도 있다.

깁슨은 평생 건강 문제로 고통받았다. 1922년 약혼자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신경 쇠약을 겪었고, 정신 이상 판정을 받아 2년간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1925년 초에는 로마에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무솔리니 저격 사건

1926년 4월 7일, 깁슨은 로마의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에서 국제 외과의사 대회 연설을 마치고 군중 속을 걸어가던 무솔리니에게 총을 쏘았다. 그녀는 검은 숄에 숨긴 모델 1892 리볼버를 사용했으며, 필요시 무솔리니의 차량 유리를 깨기 위한 돌도 준비하고 있었다. 첫 발은 무솔리니가 그 순간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그의 코를 스치는 데 그쳤고, 두 번째 발사는 불발되었다. 무솔리니의 아들 로마노 무솔리니의 회고록에는 깁슨이 두 발을 쏘아 한 발은 빗나가고 한 발이 코를 스쳤다는 다른 기록이 있다.

깁슨은 현장에서 분노한 군중에게 거의 린치를 당할 뻔했으나 경찰이 개입하여 체포되었다. 무솔리니는 부상을 가볍게 여기며 "사소한 일"이라고 일축했고, 코에 붕대를 감은 채 행진을 계속했다.

조사 과정에서 깁슨은 무솔리니를 쏜 이유에 대해 "신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라고 진술했으며, 신이 천사를 보내 팔을 안정시켜 주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녀는 아일랜드 시민권을 보유하지 않았던 관계로 기소 없이 석방된 후 영국으로 추방되었다. 이는 무솔리니의 요청에 따른 조치였으며, 영국 정부는 이에 대해 감사를 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암살 시도는 오히려 무솔리니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불러일으켰고, 파시스트 친화적 법안 통과에 기여하여 그의 이탈리아 지배 강화에 영향을 주었다.

말년과 사망

깁슨은 이후 영국 노샘프턴의 세인트 앤드루스 병원(St Andrew's Hospital)에서 여생을 보냈다. 석방을 요구하는 반복적인 청원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정신병원에 계속 수용되었으며, 1956년 5월 2일 사망하여 노샘프턴의 킹스소프 묘지(Kingsthorpe Cemetery)에 묻혔다.

평가와 유산

깁슨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역사에서 거의 잊혀졌으나, 2010년대 이후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RTÉ 라디오 다큐멘터리 《The Irishwoman Who Shot Mussolini》, TG4의 드라마 다큐멘터리, 노긴 극단의 연극 《Violet Gibson: The Woman Who Shot Mussolini》 등이 제작되었다. 아일랜드 가수 리사 오닐(Lisa O'Neill)의 노래 "Violet Gibson"도 그녀를 기리고 있다. 2021년 더블린 시의회는 그녀를 "헌신적인 반파시스트"로 기념하는 명판을 그녀의 어린 시절 자택(메리언 스퀘어)에 설치하기로 승인했으며, 이 명판은 2022년 10월 공개되었다.

역사학자 프랜시스 스토너 손더스(Frances Stonor Saunders)는 깁슨의 생애를 다룬 저서 《The Woman Who Shot Mussolini》(2010)를 출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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