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딩 육군군관학교(保定陸軍軍官學校)는 중화민국 북양정부 시기인 1912년 허베이성 바오딩(보정)에 설립된 근대식 육군 사관학교이다. 청말 신군(新軍) 양성 기관의 전통을 계승하여 신해혁명 직후 북양군벌의 핵심 장교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설립 배경 및 연혁 1912년 10월, 북양정부의 초대 육군총장 단기서(段祺瑞)의 주도로 '육군군관학교(陸軍軍官學校)'라는 명칭으로 개교하였다. 교장은 왕화이칭(王懷慶)이 맡았으며, 초창기에는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자들과 청말 육군속성학당(陸軍速成學堂) 졸업생들이 교관단으로 활동하였다. 1913년 '바오딩 육군군관학교'로 정식 교명을 변경하였고, 1928년 국민정부의 북벌 완료 후 난징 중앙육군군관학교(황푸군관학교)와 통합·개편되어 '중국 육군군관학교 제3분교'로 편입되었다가 이후 제4분교, 보병학교 등으로 명칭이 변경되며 운영되다가 제2차 국공내전기인 1949년 폐교하였다.
교육 체계 및 특징 초기 3년제(예과 1년, 본과 2년)로 출발하였으나, 군벌 시대 장교 수요 급증에 따라 속성반(6개월~1년 과정)을 다수 개설하여 다수의 초급 장교를 배출하였다. 교육 과정은 보병, 포병, 공병, 기병, 군수, 통신 등 병과별로 나뉘었으며, 일본식 군사 교범과 독일식 병영 제도가 혼용되었다. 정신 교육으로는 '구국(救國)', '충의(忠義)' 등을 강조하는 북양군벌 계열의 국민당적 색채가 강하였다.
주요 졸업생 및 역사적 의의 바오딩 군관학교는 황푸군관학교와 함께 근대 중국 군대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며, 1기부터 17기(정규과정 기준)까지 약 1만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주요 졸업생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중국 원정군 사령관 두위밍(杜聿明), 쑨리런(孫立人), 류페이(劉斐), 한국 광복군 창설에 관여한 이범석(李範奭), 장준하(張俊河) 등이 있다. 졸업생들은 국공내전, 중일전쟁, 한국전쟁 등 20세기 중반 동아시아 주요 전장에서 양대 진영(국민당군, 공산당군, 만주국군, 한국광복군 등)의 핵심 지휘부로 활동하였다.
평가 근대 중국 장교단의 전문화와 표준화에 기여했으나, 군벌 할거기 정치군인 양성의 산실이기도 했다. 일본 육사 출신 교관단의 영향으로 일본군 전술 교리가 깊이 이식되었으며, 이는 이후 중일전쟁기 중국군 편제와 작전 교리의 근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