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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아르히포프

바실리 아르히포프(본명: 바실리 알렉산드로비치 아르히포프, 러시아어: Васил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Архипов, 1926년 1월 30일 ~ 1998년 8월 19일)는 소련 해군 장교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핵 어뢰 발사를 저지하여 전면적인 핵전쟁을 막는 데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생애

아르히포프는 모스크바 근교 스타라야 쿠파브나 마을의 러시아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태평양 고등 해군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945년 8월 소련-일본 전쟁(만주 전략 공세 작전)에 소해정 승조원으로 참전하였다. 이후 아제르바이잔 고등 해군 학교(카스피 해군사관학교)로 옮겨 1947년에 졸업하였다.

K-19 사고 (1961년)

1961년, 아르히포프는 소련 최초의 핵잠수함 K-19의 부사령관으로 승선 중이었다. 당시 K-19는 원자로 냉각 계통 고장으로 인한 방사능 누출 사고를 겪었으며, 아르히포프는 승무원들을 지휘하여 사고 수습에 임했다. 이 사고로 인해 다수의 승무원이 과다 방사선 피폭으로 사망하였다.

쿠바 미사일 위기 (1962년)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아르히포프는 소련 디젤 추진 잠수함 B-59의 부함장 겸 소함대 참모총장으로 승선하고 있었다. B-59는 핵 어뢰를 탑재하고 카리브 해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1962년 10월 27일, 미 해군이 B-59를 발견하고 훈련용 폭뢰를 투하하여 강제 부상을 시도하였다. 잠수함 내부는 외부와의 통신이 두절된 상태였으며, 승무원들은 실제 폭뢰 공격을 받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당시 소련 잠수함의 핵 어뢰 발사 규정은 함장, 정치 장교, 부함장(소함대 참모총장) 세 명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했다. 함장 발렌틴 그리고리예비치 사프니코프와 정치 장교 이반 세묘노비치 마슬렌니코프는 핵 어뢰 발사에 동의하였으나, 아르히포프는 이를 거부하였다. 그의 거부로 인해 핵 어뢰는 발사되지 않았고, 잠수함은 결국 부상하여 모스크바의 명령을 기다리게 되었다.

평가

2002년, 당시 미국 국가안보기록원(National Security Archive) 원장이었던 토마스 S. 블랜튼(Thomas S. Blanton)은 아르히포프를 "세상을 구한 사람(The Man Who Saved the World)"으로 평가하였다. 아르히포프의 결정이 없었다면 핵 어뢰가 발사되어 전면적인 핵전쟁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존재하나, 실제로 그러한 발사 이후 어떤 사건이 전개되었을지는 확인할 수 없다. 아르히포프는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와 함께 핵전쟁을 막은 인물로 자주 거론된다.

사망

아르히포프는 1998년 8월 19일 사망하였다. 그의 업적은 사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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