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알렉세예비치 덱탸료프(러시아어: Васи́лий Алексе́евич Дегтярёв, 1880년 1월 2일 ~ 1949년 1월 16일)는 러시아 및 소비에트 연방의 무기 설계자이다. 기관총, 기관단총, 대전차소총 등 다양한 자동화기를 설계하여 소련 적군의 무기 체계 구축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생애
덱탸료프는 러시아 제국 툴라(Tula)에서 세습 총포 제조공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11세 때 학교를 떠나 툴라 무기 공장에서 스프링 검사원과 기계 조작원으로 일했다. 1901년 징집되어 군 복무 중 무기 제조 관련 업무에 종사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후에는 세스트로레츠크 무기 공장에서 블라디미르 표도로프로부터 훈련을 받았다.
1918년부터 소비에트 연방 최초의 화기 설계국인 코브로프(Kovrov) 무기 공장의 설계국을 이끌었다.
주요 설계 무기
덱탸료프는 총 82종의 기관총, 기관단총, 대전차소총을 개발했으며, 이 중 19종이 공식 채택되었다.
- 1927년: 7.62mm 경기관총 DP-27(Degtyaryov Pekhotny)이 적군에 채택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전차 기관총 DT(1927), 항공기 기관총 DA와 DA-2(1928)가 개발되었다.
- 1930년경: 12.7mm 대구경 기관총 DK(대구경 덱탸료프)를 설계했다. 이후 게오르기 슈파긴이 개량하여 DShK(덱탸료프-슈파긴 대구경 기관총)로 발전하였다.
- 1934년: 기관단총 PPD(덱탸료프 기관단총)가 소련군에 채택되었고, 1940년에 개량형 PPD-40이 등장했다.
- 1939년: 중기관총 DS-39가 설계되어 1939~1940년 소련-핀란드 겨울 전쟁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탄띠 급탄 구조의 문제로 탄약 케이스 손상과 오작동이 발생하여 생산이 중단되었고, 이후 SG-43이 그 자리를 대체하였다.
- 1941년: 독일의 소련 침공 당시 14.5mm 대전차소총 PTRD-41을 개발했다.
- 이후 7.62×39mm 중간탄을 사용하는 탄띠 급탄식 경기관총 RPD를 설계했다.
학위 및 직위
1940년에 기술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944년에는 공병·포병 기술부 소장(소장 계급)으로 승진하였다.
수상 경력
- 1940년: 사회주의 노동 영웅 칭호 (이 칭호는 이오시프 스탈린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수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스탈린 상: 1941년, 1942년, 1944년, 그리고 사후인 1949년에 각각 수상
- 레닌 훈장 3회(1933, 1940, 1944)
- 수보로프 훈장 1급(1945) 및 2급(1944)
- 그 외 다수의 훈장과 메달
사망 및 추모
덱탸료프는 1949년 1월 16일 모스크바에서 사망했으며, 코브로프의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사후 소련 각료회의 결의에 따라 여러 교육 기관에 그의 이름을 딴 장학금이 제정되었다. 1954년 코브로프에 동상이 세워졌고, 1978년에는 그의 자택에 기념 박물관이 개관하였다. 전 소련 지역의 여러 도시(하르키우, 노보시비르스크, 로모노소프,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에 덱탸료프의 이름을 딴 거리가 존재한다. 2004년에는 러시아 우체국이 그의 초상이 담긴 우표를 발행하였다.
기타
덱탸료프는 1941년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그의 이름은 코브로프의 무기 공장, 각종 학교, 문화 시설 등에 붙여져 있으며, 2020년 러시아 영화 《AK-47》에 등장인물로 묘사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