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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를레타 결투

바를레타 결투(이탈리아어: Disfida di Barletta)는 제3차 이탈리아 전쟁(1499~1504년) 중이던 1503년 2월 13일,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주 바를레타 인근 트라니 외곽, 코라토와 안드리아 사이의 평야에서 벌어진 결투이다. 이 결투는 이탈리아 기사 13명과 프랑스 기사 13명이 마상창 시합으로 맞선 사건으로, 이탈리아 측의 승리로 끝났다.

배경과 원인

1503년 1월, 프랑스 군대는 카노사디풀리아 지역에서 스페인 군대와 소규모 충돌을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소수의 프랑스 병사들이 포로로 붙잡혀 바를레타로 끌려왔다. 포로 중에는 귀족 출신의 샤를 드 토르그(무슈 기 드 라 모트로도 알려짐)가 있었다.

같은 해 1월 15일, 프랑스 포로들은 만찬에 초대되었는데, 만찬 중 라 모트가 당시 스페인군과 동맹을 맺고 있던 이탈리아 병사들의 무용과 용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언쟁이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 측이 규칙을 정해 결투가 성사되었다. 프랑스 측은 참가자 수를 13명으로 정했는데, 이는 13이라는 숫자가 불길하다는 미신과 관련이 있어 이탈리아 측이 결투를 거부할 명분이 생길 것이라는 라 모트의 의도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결투의 조건과 진행

결투는 승리 측이 패배 측의 무기와 말을 전리품으로 획득하고, 패배 측 기사 한 명당 100두카트의 몸값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양 측은 담보로 인질 두 명씩을 주고받아야 했다. 이탈리아 참가자 구성은 프로스페로 콜론나와 파브리치오 콜론나가 맡았고, 이탈리아 측 대장은 에토레 피에라모스카였다.

이탈리아 측 참가자로는 에토레 피에라모스카, 프란체스코 살라모네, 마르코 콜로라리오, 리초 다 파르마, 굴리엘모 알비몬테, 마리아노 아비녠테, 조반니 카포초, 조반니 브란칼레오네, 루도비코 아베네볼리, 에토레 조벤날레, 판풀라 다 로디, 로마넬로 다 포를리, 미알레 다 트로이아가 있었다. 프랑스 측은 샤를 드 토르그를 비롯한 13명이 참여했다.

결과와 영향

결투는 이탈리아 측의 승리로 끝났고, 프랑스 기사들은 몸값을 지불해야 했다. 바를레타는 이후 이 사건을 기념하여 '결투의 도시'(Città della Disfida)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다. 현재 바를레타에는 이 결투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결투가 벌어진 장소에도 비문이 존재한다.

이 사건은 이후 이탈리아 작가 마시모 다첼리오가 1833년에 발표한 역사 소설 『에토레 피에라모스카, 또는 바를레타 결투』(Ettore Fieramosca, o la disfida di Barletta)의 소재가 되었고, 1976년 이탈리아 코미디 영화 『Il soldato di ventura』에서도 희극적으로 묘사된 바 있다. 결투의 주요 1차 사료로는 프랑스 연대기 작가 장 도통(Jean d'Auton)의 『연대기』(Chroniques de Jean d'Auton)가 활용된다.

바를레타 결투는 이탈리아 역사에서 민족적 명예를 지킨 상징적인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탈리아 국내외의 역사 서적과 교육 자료에서 폭넓게 다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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