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렌 사건(영어: Flight to Varennes, 프랑스어: La fuite à Varennes)은 1791년 6월 20일부터 22일까지 프랑스 혁명 시기에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와 왕족 일가가 파리를 탈출하여 도주하려다가 바렌(Varennes) 마을에서 붙잡힌 사건이다. 바렌 도주 사건, 바렌느 배신 사건으로도 불린다.
배경
프랑스 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루이 16세는 입헌군주제 아래에서 점차 권한을 박탈당하고, 튈르리 궁전에서 사실상 연금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1791년 4월 18일 생클루(St-Cloud)로 행차하려던 왕실 일가가 민중에 의해 저지당한 사건은 국왕이 자신들이 사실상 포로임을 자각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에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는 국외로 도주하여 외세의 도움으로 혁명 세력을 진압할 계획을 세웠다.
계획은 왕비의 주도 아래 스웨덴 귀족 한스 악셀 폰 페르센(Hans Axel von Fersen)이 중심이 되어 추진되었고, 최종 목적지는 프랑스 북동부 국경에 위치한 몽메디(Montmédy) 요새로 정해졌다. 국경 지역 군대를 지휘하던 부이예 후작(Marquis de Bouillé)이 호위 병력 배치를 담당했다.
경과
1791년 6월 20일 자정 무렵,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왕세자 루이 샤를, 공주 마리 테레즈, 왕의 여동생 엘리자베스 등은 각각 변장하여 튈르리 궁전을 빠져나왔다. 그들은 대형 베를린 마차를 타고 북쪽으로 향했으나, 여러 요인으로 인해 계획은 차질을 빚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대형 마차는 느린 속도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고, 도중에 예정된 호위 부대와의 합류에도 실패했다.
6월 21일 오전 6시, 왕실 일가의 부재가 발견되었고 라파예트가 이끄는 국민방위대는 즉시 추격대를 조직했다. 같은 날, 생트므누(Sainte-Menehould) 마을의 역장 장바티스트 드루에(Jean-Baptiste Drouet)가 국왕 일행을 알아보고 추격에 나섰다.
체포
드루에 일행은 국왕 일행보다 먼저 바렌 마을에 도착하여 다리를 봉쇄하고 경보를 울렸다. 6월 21일 밤 늦게 바렌에 도착한 국왕 일가는 마을 식료품점 2층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포위당했다. 슈아죌(Choiseul) 대령이 엽기병을 이끌고 구출을 시도했으나 이미 수많은 군중과 국민방위대가 모여들어 강행 돌파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6월 22일, 의회에서 파견된 사자들이 도착하여 국왕 일가를 체포하였고, 6월 25일 저녁 국왕 일가는 파리로 압송되어 튈르리 궁전으로 돌아왔다.
영향
바렌 사건은 프랑스 혁명의 중대한 분기점이 되었다. 국왕이 외국 군대를 빌려 혁명을 진압하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왕에 대한 신뢰는 결정적으로 붕괴되었다. 입헌군주제 지지 세력(푀양파)은 국왕이 납치되었다는 허위 주장을 펼쳤으나, 이 사건은 공화주의 운동을 급격히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시기 루이 16세의 동생 프로방스 백작(훗날 루이 18세)은 별도로 도주하여 무사히 국외로 망명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1792년 8월 10일 사건으로 군주제는 사실상 종말을 맞았으며, 1793년 1월 루이 16세는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또한 이 사건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 주변 군주국들이 필니츠 선언(1791년 8월)을 발표하고 이후 프랑스 혁명 전쟁(1792~)으로 이어지는 외교적·군사적 국면을 형성하는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