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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찬호

민찬호(閔贊鎬)는 일제강점기 미국과 하와이 일대에서 활동한 한인 목사이자 독립운동가이다. 1877년 10월 21일 황해도 평산도호부(현 황해북도 평산군)에서 태어났으며, 1954년 2월 5일 사망하였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이명으로는 민찬호(閔燦鎬)·민찬호(閔讚鎬)가 기록되어 있다.

민찬호는 1894년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서재필의 지도 아래 독립협회 계열의 토론 단체인 협성회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1901년 한국 감리교 서울 전도사로 임명되었으며, 1903년 정동교회 목사 최병헌이 부임하자 교회 사무를 돕고 청년 교인들을 위한 야학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1901년 YMCA 발족 당시 초대 회장으로 선임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1905년 미국 하와이로 이주한 이후 그의 행보는 한인사회의 종교·교육·민족운동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호놀룰루 한인감리교회 2대 목사로 부임하였고, 한인기숙학교 및 한인교회 내 교육 기관을 운영하였다. 1906년경 호놀룰루에서 열린 한인합성협회에 참여하였고, 1909년 국민회 창립에 관여하였다. 1913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안창호 등이 조직한 흥사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같은 해 이사장으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1918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결정에 따라 정한경·이승만과 함께 시카고에서 열린 제1차 소약소국동맹회의에 참석했고, 이들 세 명의 명의로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에 대한 위임 통치를 청원하는 서한을 보냈다. 1919년 4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대한인자유대회에 파견되었다. 1919년부터 1928년경까지 하와이 한인기독학원 교장으로 재직하며 한인 청년 교육에 힘썼다. 1921년에는 하와이 교민단 단장을 맡았고, 같은 해 호놀룰루에서 이승만과 함께 동지회를 창립하였다.

1930년대 이후에는 반이승만 계열 성향을 보이기도 했으며, 1938년 중한민중동맹단 이사장, 1943년 중한민중동맹단 단장 및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 총지부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중국 충칭에서 열린 조선민족혁명당 대표회의에서 명예주석단에 선출되었다.

그의 부인은 하와이 초기 한인 목사였던 홍치범의 동생인 몰리 홍 민으로, 1913년 결혼하였다. 몰리 홍은 가정 경제와 자녀 교육을 맡으며 목회·민족운동에 몰두한 민찬호를 뒷받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후 평가로, 201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이 밖에 한인역사박물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에 그의 생애가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민찬호는 이름이 같은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현재 활동하는 일반인 가운데 같은 이름의 개인이 있을 수 있으나, 백과사전적 의미에서 민찬호는 위와 같은 독립운동가·목회자로서의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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