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청년연합(民主化運動靑年聯合)은 약칭 '민청련'으로 불리는, 1983년 9월에 설립된 대한민국의 민중운동단체이다. 197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하였다. 창립 당시 채택된 발기문에는 민족통일, 부정부패·특권정치의 청산, 냉전체제 해소 등을 목표로 하고, 민중운동의 흐름 속에서 양심적 지식인·종교인·정치인·노동자·농민과의 연대를 강화하여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새로운 사회 건설에 매진하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었다.
창립 배경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은 학생운동에 대한 강한 탄압을 이어갔음에도 학원가의 반정부시위가 계속되자, 집권 3년차인 1983년에 구속 학생의 석방과 제적 학생의 복학 조치 등의 유화 정책을 취하였다. 이에 따라 197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학원가로 복귀하면서 침체되었던 운동권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당시 운동권 내부에서는 이전 민주화운동의 실패가 민중의 참여 부족에서 비롯되었다는 자성적 논의가 확산되었고, 이러한 맥락에서 민중민주주의 노선을 따르는 단체로서 민청련이 결성되었다.
창립은 1983년 9월 30일 서울 성북구 돈암동 가톨릭 상지회관에서 이루어졌으며, 경찰의 삼엄한 경계 속에서 약 59명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초대 의장은 김근태, 부의장은 장영달이었으며 5명의 집행부가 선출되었다.
주요 활동과 탄압
민청련은 1984년 이후 민주화운동 전선의 재정비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1984년 민중민주운동협의회와 민주통일국민회의가 통합되어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이 결성되는 과정에도 실천과 이론 양면에서 기여하였다.
1985년 5월, 민청련을 비롯한 민주화운동 단체들이 '광주학살정권퇴진을 위한 국민대회'를 주최하면서 정부의 집중적인 탄압을 받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의장이던 김근태를 비롯한 여러 관련자들이 구속되었고, 김근태는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근태에 대한 고문 사실이 알려지면서 민청련과 신민당이 주도하는 '고문 및 용공조작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구성되었다. 이 위원회는 이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로 발전하여 1987년 6·10 민주항쟁에 커다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해산과 이후
민청련은 1992년 9월 창립 10주년 기념식을 끝으로 공식 해산하고 '민청련동지회'를 결성하였다. 한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민청련은 1992년 9월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로 확대 개편된 것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민청련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서 학생운동과 기성세대의 연대를 이어주는 핵심적 고리 역할을 수행한 단체로 평가된다. 이후 다수의 구성원들이 정치인, 사회운동가로 활동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현대사 60년』(서중석, 역사비평사, 2007)
- 「1980년대 민족민주운동과 민주화운동청년연합」(유기홍, 『기억과 전망』23, 2010)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위키백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