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무늬토기 시대(無文土器時代, Mumun pottery period)는 한반도의 고고학적 시대구분으로, 한국의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기원전 1500년경부터 기원전 300년경까지의 시기를 가리킨다. 이 시대의 전형적인 토기가 표면에 무늬가 없는 특징을 지녀 '민무늬토기'라고 불리며, 이 토기 양식을 기준으로 시대가 명명되었다.
개요
민무늬토기 시대는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 시대에 이어지는 시기로, 한반도에서 대규모 농경이 시작되고 사회에 계급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 시기는 이후 원삼국시대의 원시 국가 형성으로 연결된다. 과거에는 단순히 '청동기시대'로 불렸으나, 청동기가 한반도에 출현한 것은 기원전 13세기경이며 보편화된 것은 말기였기 때문에, 청동기라는 단일 유물 기준보다는 당시 가장 널리 사용된 토기 양식을 기준으로 '민무늬토기 시대'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시대 구분
민무늬토기 시대는 일반적으로 전기, 중기, 후기, 말기로 구분된다.
전기(기원전 1900년~기원전 850년경)에는 농경 외에도 어로, 수렵, 채집이 병행되었다. 큰 직사각형의 움집으로 이루어진 취락이 형성되었으며, 후반에는 취락이 대규모화되고 취락마다 유력자가 등장하였다. 고인돌과 부장품인 붉은간토기, 돌칼 등 민무늬토기 시대 전반에 걸쳐 지속되는 종교·장제적 특징이 이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중기(기원전 850년~기원전 550년경)에는 대규모 농경이 시작되고 사회적 계급과 분쟁이 발생하였다. 한반도 이남에서는 대규모 논이 조성되었고 수백 채 이상의 대규모 취락이 출현하였다. 청동기가 출현하기 시작했으며 공예품 생산이 활발해져 교역과 지배 계층에 의한 분배가 이루어졌다. 중기 민무늬토기 문화는 충남 부여군 송국리 유적의 이름을 따 '송국리 문화'라고도 불리며, 중남부 지역에서 특히 발전하였다.
후기(기원전 550년~기원전 300년경)에는 환호취락이나 고지대 취락이 증가하였다. 특히 남해안 지역에 인구가 집중되었으며, 취락 수는 이전 시기보다 줄어들어 소규모 집단이 모여 사는 현상이 진행되었다. 말기에는 철기가 출현하고 주거에 온돌용 아궁이가 나타났으며, 비파형동검의 영향 아래 세형동검이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민무늬토기의 특징
민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에 대비되는 용어로, 표면에 문양이 없거나 적은 토기를 말한다. 다만 '무늬가 없다'는 의미와 달리 아가리 부분에 한정하여 빗금무늬, 골아가리무늬, 구멍무늬 등이 새겨지기도 한다. 장석, 석영, 운모 등의 비짐을 섞어 800℃ 이하의 온도에서 소성되었으며, 빛깔은 주로 갈색을 띤다.
민무늬토기는 지역별로 다양한 양식이 전개되었다. 한반도 남부에는 전기 문화로 금강 유역의 가락식토기, 역삼동식토기, 흔암리식토기가 있었고, 중기에는 송국리형토기, 후기에는 덧띠토기, 검은간토기 등이 전개되었다. 북부 지역에서는 팽이형토기, 미송리형토기 등이 확인된다.
주요 유적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부여 송국리 유적(사적 제249호), 울주 검단리 유적(사적 제33호), 속초 조양동 유적(사적 제376호), 진주 대평 유적, 제천 황석리 유적 등이 있다.
의의
민무늬토기 시대는 한반도에서 본격적인 농경 사회가 성립되고 계층화된 사회 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이후 원삼국시대의 국가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고고학적 시기이다. 민무늬토기는 서기전 2세기 중엽부터 서기전 1세기경에 걸쳐 새로운 기술 체계로 제작된 와질토기 등으로 점차 대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