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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두호

민두호(閔斗鎬, 1829~1902)는 조선 후기 고종 대에 활동한 문신이다.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자는 성요(聖堯)이다. 생몰 연도에 대해서는 일부 자료에서 1829년 출생, 1902년 사망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위키백과 등 일부 자료에서는 생졸년이 미상으로 표기되어 있다.

민두호는 현감 민치서(閔致敍)의 아들이며, 일부 족보 기록에 따르면 민치우의 아들이었다가 민치서의 계자(繼子)가 되었다고 한다. 아들로는 조선 말기 친일 관료였던 민영휘(閔泳徽)가 있다. 명성황후의 친척 오라버니이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관직 이력에 있어서, 1869년(고종 6) 서사(筮仕)로 감역(監役)이 되었으며, 1880년(고종 17) 황주목사(黃州牧使)를 지냈다. 1882년에는 여주목사(驪州牧使)에 재임되었고, 1886년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춘천부사에 올랐으며 독련어사(督鍊御史)의 역할을 맡기도 하였다. 이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춘천부에 유수(留守)가 설치되자, 춘천부사에서 그대로 춘천부유수가 되어 1892년까지 재임하였다.

1893년 5월 독판내무부사(督辦內務府事)에 임명되었으며, 같은 해 12월 다시 춘천부유수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춘천부유수 재임 시절 동학농민전쟁 발발에 대한 문책으로 조정의 민씨 척족(戚族)들이 해직되면서 민두호도 함께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 후 1900년에 의정부찬정(議政府贊政)에 임명되고 칙임관 1등에 서임되었으며, 1902년 종1품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올랐다. 사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민두호의 생애에 관한 기록은 『고종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사료에 근거하고 있으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디지털용인문화대전 등 여러 백과사전에서 수록하고 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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