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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마튜신

미하일 바실리예비치 마튜신(러시아어: Михаил Васильевич Матюшин, Mikhail Vasilyevich Matyushin, 1861년~1934년 10월 14일)은 러시아의 미술가, 작곡가, 예술 이론가로,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이다.

생애 및 배경

마튜신은 1861년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지주와 농노 여성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독학으로 바이올린을 익혔으며, 8세에 니즈니노브고르드 음악학교에 입학한 후 1875년부터 1881년까지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정식으로 음악을 공부했다. 1882년부터 1913년까지 페테르부르크 궁정 악단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하였다. 1890년대에는 페테르부르크의 사립 학교에서 미술 교육을 받았다.

1903년부터 1905년까지 이안 총린스키 미술학교에서 아내가 될 엘레나 구로(Елена Гуро, 1877~1913)를 만났다. 16세 연하였던 구로는 마튜신의 예술과 사회관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두 사람은 러시아 큐보-미래주의(Cubo-Futurism) 운동의 핵심이 되었다.

예술 활동

1910년부터 1913년까지 마튜신과 구로는 러시아 미래주의자 협회인 '청년 연합'(Union of Youth)의 주요 구성원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1910년 러시아 미래주의 첫 번째 연감인 《심판관의 덫》(Садок судей)을 공동 출간하였다.

1913년,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기념비적 해에 마튜신은 카지미르 말레비치, 벨리미르 흘레브니코프, 알렉세이 크루초니흐와 함께 최초의 미래주의 오페라인 《태양의 정복》(Victory Over the Sun)을 제작하였다. 마튜신은 이 오페라의 음악을 작곡했으며, 말레비치는 무대미술을 담당하였다. 이 작품은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이 처음 등장한 무대로도 유명하다.

색채 이론 및 후기 활동

마튜신은 인간 감각의 생리학을 연구하여 시각 예술과 음악을 연결하는 고유의 4차원 개념 이론을 발전시켰다. 1918년에는 구 제국 미술 아카데미를 장악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함께 자유 작업실(SVOMAS)에서 색채 수업을 진행했다. 1921년 국가가 아카데미를 재개편하면서 신고전주의 복고파가 주도권을 잡자, 마튜신은 말레비치, 블라디미르 타틀린과 함께 교수직을 잃었다.

이후 레닌그라드 예술문화연구소(INHUK)로 물러나 색채와 지각에 관한 실험을 계속했다. 그는 '조르베드'(Zorved, Зорвед, '보고 알다'라는 뜻)라는 시각 연구 센터를 설립하여, 인간의 시각 감수성을 확장하면 공간 인식에서 새로운 유기적 리듬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간이 360도 전방위를 볼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후방 평면(rear plane) 개념을 도입하고, 뒤에 있는 대상을 지각할 수 있는 시각 중추가 인간에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1932년에는 자신의 색채 이론을 집대성한 《색채 참고서》(Справочник по цвету)를 출간하였다. 1918년부터 1934년 사망할 때까지 레닌그라드의 브후테인(Vkhutein)과 INHUK에서 강의하며 자신의 이론을 가르쳤다.

사망 및 유산

마튜신은 1934년 10월 14일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망했다. 그의 아내 엘레나 구로는 1913년 백혈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마튜신과 구로의 목조 주택은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아방가르드 박물관(Museum of Avant-Garde)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의 중요한 유산을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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