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역사는 약 13,000년 전의 최초 인류 거주 흔적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길고 복잡한 과정을 포함한다. 미얀마 지역의 역사는 현재의 국경을 넘어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태국, 라오스 등 이웃 국가들과도 밀접하게 얽혀 있어 특히 역동적이다. 이 지역에서는 여러 민족이 차례로 등장하고 몰락하며 오늘날의 미얀마를 형성해 왔다.
고대 시기 (선사 시대~9세기)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미얀마 중부 건조지대에서는 기원전 11,000년경부터 문화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라와디강 유역에서는 신석기 시대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만달레이 남쪽 사몬 계곡에서는 기원전 500년경부터 기원후 200년 사이에 중국과 교역하던 벼 농경 정착지가 존재했던 흔적이 확인된다.
기록된 역사의 최초 거주민 집단으로는 티베트버마어족에 속하는 쀼(Pyu)족이 있다. 기원전 2세기경 윈난 지역에서 이라와디강 계곡으로 이주한 쀼족은 스리크세트라(Sri Ksetra) 등 여러 도시 국가를 세웠으며, 인도와 중국 사이의 육상 교역로 역할을 담당했다. 8세기 중국 사료는 18개의 쀼 도시 국가가 이라와디 계곡에 존재했다고 기록한다. 쀼족은 상좌부(테라바다) 불교를 수용했고, 9세기 초 윈난의 남조 왕국이 쀼 도시 국가들을 잇달아 공격하면서 쀼 문명은 급격히 쇠퇴하였다.
남부에서는 몬(Mon)족이 이라와디강 하류에 정착하여 바고와 타톤을 중심으로 한 소왕국들을 세웠다. 한편 7세기부터 버마족(Bamar)이 윈난 지역에서 이라와디 계곡 상류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버간(파간) 왕조 (9세기 중반~1287년)
버마족은 9세기 중반경 지금의 바간에 요새화된 정착지를 세웠으며, 아나우라타 왕(1044~1077) 치세에 이르러 이라와디 계곡 전역으로 영향력을 확장하며 미얀마를 처음으로 통일하였다. 아나우라타는 1057년 몬족의 수도 타톤을 점령한 뒤 상좌부 불교를 수용하였고, 이후 왕실의 후원 아래 불교는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버간 왕국은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수천 개의 불탑과 사찰을 건설했으며, 이를 통해 동남아시아의 주요 강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1287년 몽골 제국(쿠빌라이 칸)의 침공으로 버간이 약탈당하면서 이 지역의 오랜 통일 체제는 붕괴되었다.
분열 시기 (1287~1531년)
버간 왕조가 멸망한 후 미얀마는 여러 소왕국으로 분열되었다. 버마족의 잉와(아바) 왕국, 몬족의 한따와디(바고) 왕국, 서부의 아라칸 왕국, 동부의 샨족 국가들이 서로 전쟁과 동맹을 반복하며 패권을 다투었다. 이 시기 잉와와 한따와디 사이의 40년 전쟁(1385~1424)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며, 몬족 문화와 불교는 번영을 누렸다.
따웅우 왕조 (1510~1752년)
따웅우 왕조는 떠빈슈웨티 왕(1531~1551)과 그 후계자 바인나웅 왕(1551~1581) 아래에서 분열된 왕국들을 재통일하고 동남아시아 역사상 최대 제국을 잠시 건설했다. 바인나웅은 샨, 란나(치앙마이), 아유타야(시암), 란쌍(라오스) 등을 차례로 정복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후 제국은 곧 해체되었고, 이후 아나욱펫룬 왕(1605~1628)이 포르투갈 세력을 격퇴하고 왕국을 재건하였다. 따룬 왕(1629~1648) 시기에는 버마 역사상 최초의 인구 조사(1635년)가 실시되기도 했다. 이후 왕국은 점차 쇠퇴하여 1752년 몬족의 한따와디 부흥 왕국에 의해 멸망하였다.
꼰바웅 왕조 (1752~1885년)
알라웅파야 왕(1752~1760)이 세운 꼰바웅 왕조는 미얀마를 다시 통일하였다. 이 왕조는 시암 및 청나라와 각각 전쟁을 치렀으며(청나라와는 1765~1769년 4차례), 서쪽으로는 아라칸(1785년), 마니푸르, 아삼을 병합하면서 영국령 인도와 국경을 맞대게 되었다. 이로 인해 1824년부터 1885년까지 세 차례의 영국-버마 전쟁이 발생했다. 제1차 전쟁(1824~1826) 후 미얀마는 아라칸과 아삼, 따닝다이를 잃었고, 제2차 전쟁(1852)에서 저지 버마를, 제3차 전쟁(1885)에서 수도 만달레가 함락되며 마지막 왕인 티버 왕이 인도로 추방되었다. 이로써 미얀마의 군주제는 종식되었다.
영국 식민지 시대 (1886~1948년)
영국은 1886년 미얀마를 인도 제국의 한 주로 편입시켰다. 식민 통치 아래에서 전통적인 쌀 농업 사회는 급격히 변화했으며, 인도인 고리대금업자와 노동자의 유입으로 경제 체제가 재편되었다. 20세기 초부터 민족주의 운동이 성장했고, 1920년대에는 학생 파업과 불교 승려 주도의 반식민 운동이 이어졌다. 1937년 미얀마는 인도로부터 분리되어 별도 식민지로 편성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웅산을 비롯한 독립 운동가들은 일본의 지원을 받아 버마 독립군을 조직했으나, 전쟁 후반에는 연합군에 합류하여 일본에 대항했다(1945년 3월 27일 반일 봉기).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민간인 희생이 발생했으며, 소수민족 간 긴장도 심화되었다.
독립과 초기 공화국 (1948~1962년)
1947년 아웅산은 팡롱 조약을 통해 소수민족과의 통일 합의를 이끌어 내고 영국과 독립 협정을 체결했으나, 같은 해 7월 암살당했다. 1948년 1월 4일 미얀마는 버마 연방으로 공식 독립했다. 우 누(누) 수상 하의 신생 정부는 좌우파 대립, 공산당 및 소수민족 세력의 무장 봉기 등으로 심각한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1958년에는 네 윈 장군이 위기 관리 내각을 맡았다가 1960년 총선 후 우 누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그러나 불교 국교화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혼란이 재현되었다.
군사 정권 시기 (1962년~2011년)
1962년 3월 네 윈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버마식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자국을 국제사회로부터 폐쇄했다. 1974년 새 헌법 아래 일당제(버마사회주의계획당) 체제가 유지되었다. 경제 정책 실패와 화폐 개혁(1987년) 등으로 경제가 악화되면서 1988년 8월 8일 대규모 민주화 운동(8888 항쟁)이 발생했으나 군부가 유혈 진압했다. 같은 해 9월 신군부(국가법질서회복평의회, SLORC)가 정권을 장악했다.
1989년 군부는 국명을 버마(Burma)에서 미얀마(Myanmar)로 변경했다.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수찌와 민족민주동맹(NLD)은 1990년 총선에서 압승했음에도 군부가 선거 결과를 수용하지 않았으며, 아웅산수찌는 장기간 가택 연금 상태에 있었다. 2007년 불교 승려 주도의 시위(사프란 혁명)가 무력 진압되었다. 2008년 사이클론 나르기스로 13만 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대규모 재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2008년 신헌법이 국민투표로 채택되었다.
민주화 이행과 최근 상황 (2011년 이후)
2011년 군부가 민간 정부로의 전환을 시작하며 정치·경제 개혁을 추진했다. 아웅산수찌는 2010년 가택 연금에서 풀려났고, 2015년 총선에서 NLD가 압승하여 2016년 문민 정부가 출범했다. 그러나 2017년 이후 라카인주에서 로힝야족에 대한 군부의 강경 진압으로 100만 명 이상이 방글라데시로 피난하는 인도주의 위기가 발생했다. 2020년 총선에서 NLD가 재차 압승했으나, 2021년 2월 1일 군부(타마도)가 쿠데타를 일으켜 다시 권력을 장악했고, 이후 전국적인 민간 불복종 운동과 무장 저항 세력의 활동으로 인해 미얀마는 내전 상태에 빠져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얀마의 역사는 고대 왕국의 흥망성쇠, 식민 지배, 독립, 군부 통치와 민주화 시도를 거듭하며 이 지역의 정치·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해 온 과정이다. 현재의 전개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 평가는 이후 역사적 검증을 거쳐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