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라스(그리스어: Μυστρᾶς / Μιστρᾶς, 영어: Mystras / Mistras)는 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 반도 라코니아 지역에 위치한 역사적 도시 및 고고 유적지이다. 타이게토스 산지의 해발 약 300m 고원에 자리하며, 고대 스파르타에서 서쪽으로 약 7~8km 거리에 있다.
어원
지명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추정이 존재한다. 그리스어 '미지스트라(μυζήθρα)'라는 치즈의 일종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며, 이는 언덕의 형태나 언덕 소유자의 직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프랑크인들이 이 언덕을 부르던 이름이 변형되어 '미스트라'가 되었다는 설명도 있다.
역사
미스트라스는 1249년 아카이아 공국의 기욤 2세(빌레아르두앵)가 타이게토스 산의 슬라브계 주민들로부터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산 정상에 성채를 건설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1259년 펠라고니아 전투에서 니케아 제국에 패한 기욤 2세는 포로가 되었고, 1262년 석방 조건으로 미스트라스를 포함한 일부 영토를 동로마(비잔틴) 제국에 할양하였다.
이후 미스트라스는 동로마 제국령 모레아 지역의 총독부가 되었으며, 1349년 요안니스 6세가 아들 마누일 칸타쿠지노스를 모레아의 데스포티스(전제군주)로 임명하면서 모레아 전제군주국의 수도가 되었다. 14~15세기 동안 미스트라스는 '동방의 피렌체'로 불리며 펠로폰네소스의 정치·문화 중심지로 번영하였다.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게미스토스 플레톤이 이곳에서 활동하였으며, 그의 사상은 이후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는 미스트라스에서 데스포티스로 재임 중 황제로 지명되어 이곳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1460년 5월 31일,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드 2세가 미스트라스를 무혈 점령하였다. 오스만 시기에는 미시스티레 또는 메지스트레로 불렸다. 1687년부터 1715년까지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점령하기도 하였다. 1770년 오를로프 봉기 과정에서 도시는 알바니아 민병대에 의해 약탈당했으며, 이후 쇠퇴하여 폐허가 되었다. 그리스 독립 전쟁 이후인 1831년, 주민들은 미스트라스 동쪽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였고, 이 도시는 고대 이름을 따서 스파르타라 명명되었다.
현대
1989년, 미스트라스 고고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적지 내에는 14~15세기 비잔틴 건축과 프레스코화가 다수 남아 있으며, 주요 건축물로는 데스포티스 궁전, 판타나사 수도원, 성 디미트리오스 성당, 페리블렙토스 수도원, 미스트라 성채 등이 있다. 데스포티스 궁전은 그리스에 현존하는 유일한 동로마 제국 시대의 궁전으로, 1984년부터 진행된 대규모 복원 공사 끝에 2026년 5월 전면 재개장하였다. 현재 유적지 내에는 판타나사 수도원의 수녀들만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