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테아토(Michel Théato, 본명 Michel Johann Théato, 1878년 3월 22일 ~ 1923년 4월 2일)는 1900년 파리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육상 선수이다. 룩셈부르크 시에서 태어났으며,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하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그의 메달을 프랑스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생애
테아토는 1878년 3월 22일 룩셈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이후 파리로 이주하여 생애 말기인 1923년 4월 2일 파리에서 사망할 때까지 거주하였으나,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는 프랑스 클럽인 생망데(Club Amical et Sportif de Saint-Mandé) 육상 클럽 소속으로 활동하였으며, 장기간 프랑스인으로 추정되어 왔다. 20세기 후반 룩셈부르크 스포츠 사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그가 룩셈부르크 출신임이 확인되었고, 이에 따라 그는 출생 기준으로 룩셈부르크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평가되지만, IOC 기준으로 메달은 프랑스에 귀속된다.
직업에 대해서는 배달 소년 설과 목수(또는 가구 제작자) 설이 함께 전해진다. 그가 파리의 빵집 배달 소년으로 일했으며 이 덕분에 파리의 거리에 정통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확증은 없으며 IOC 공식 전기에서는 그의 실제 직업을 목수로 기술하고 있다.
1900년 올림픽 마라톤
1900년 7월 19일 부아드불로뉴의 프레카트란 정원에서 출발한 이 대회의 마라톤은 당시 측량 기준으로 약 40.26km였다. 경기는 그늘에서 기온이 35도에 이르는 무더위 속, 오후 2시 30분경 시작되었으며, 프랑스·스웨덴·미국·영국 4개국 선수 14명이 출전하였다. 경기로는 파리의 성벽(요새선)을 따라 도시를 한 바퀴 도는 코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테아토는 대략 중반 지점부터 선두로 나서 이후 결승선까지 선두를 지켰으며, 2시간 59분 45초의 기록으로 우승하였다. 우승 직후 일부 외국 선수단이 지름길 사용을 의심하며 그의 우승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주장은 이후 올림픽 사학자들의 검증 과정에서 근거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당시 마라톤은 대회 공식 종목 목록에 초기부터 포함되어 있지 않아 그는 상으로 도기 그릇을 받았으며, 금메달은 1912년에야 수여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이후의 경력
올림픽 우승 이후 프로로 전향하였으나 두드러진 성적을 다시 내지는 못하였다. 1901년 프랑스 크로스컨트리 선수권 대회에서 2위를 기록하였으며, 같은 해 마라톤 개인 최고 기록으로 2시간 42분 44초를 남겼다.
정보의 한계: 19세기 말 ~ 20세기 초 활동 선수 특성상 생애에 대한 1차 기록이 적어, 세부 사항(출생 직후 이력, 정확한 직업, 시상 경위 등)에 대해서는 상이한 서술이 공존한다. 배달 소년 설처럼 널리 회자되나 확증이 없는 일화는 사실로 단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