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이 해전(영어: Battle of Midway)은 1942년 6월 4일부터 6월 7일까지 태평양 미드웨이 환초 인근 해상에서 미국 해군과 일본 제국 해군 간에 벌어진 해전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의 태평양 전쟁에서 전환점이 된 결정적인 전투로 평가된다.
배경
진주만 공격(1941년 12월 7일) 이후 일본군은 동남아시아와 남서 태평양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일본 제국 해군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미국 태평양 함대, 특히 항공모함을 결정적으로 격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미드웨이 환초를 점령함으로써 미국 항공모함들을 유인해 격파하는 작전을 계획했다. 이 작전은 또한 둘리틀 공습(1942년 4월)에 대한 대응이자, 일본의 방어 교두보를 확장하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암호 해독
미국 해군의 암호 해독반(블랙 쳄버)은 조제프 로슈포르 중령의 지휘 아래 일본 해군의 암호 체계인 JN-25를 부분적으로 해독하고 있었으며, 일본군 통신에서 자주 등장하는 'AF'가 미드웨이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니미츠 제독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일본군의 공격 목표와 시기를 사전에 파악하고 매복을 준비할 수 있었다.
참여 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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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항공모함 3척(엔터프라이즈, 호넷, 요크타운), 중순양함 7척, 경순양함 1척, 구축함 15척, 잠수함 20척, 미드웨이 기지 항공대를 포함한 총 232대의 함재기 및 101대의 기지 항공기. 전체 지휘는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 맡았으며, 제16기동함대(TF16)는 레이먼드 A. 스프루언스 소장이, 제17기동함대(TF17)는 프랭크 잭 플레처 소장이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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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항공모함 4척(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 전함 2척(기리시마, 하루나), 순양함 3척, 구축함 12척, 급유선 5척으로 구성된 제1기동부대(나구모 주이치 중장 지휘) 외에도 야마모토 제독의 주력 함대(전함 7척 포함)와 알류산 공략대 등 총 약 150척의 함정. 함재기 조종사들은 진주만 공격을 경험한 베테랑이었다.
전투 경과
6월 4일 오전 4시 45분, 나구모 함대는 미드웨이섬에 대한 1차 공격대를 발진시켰다. 미드웨이섬의 미군 전투기들이 요격에 나섰으나 일본군 1차 공격대는 섬의 시설에 피해를 입혔다. 1차 공격대 지휘관 토모나가 죠이치 대위는 추가 공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나구모 제독은 대기 중이던 2차 공격대의 무장을 함선 공격용 어뢰에서 육상 공격용 폭탄으로 교체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그 사이 순양함 토네에서 늦게 발진한 정찰기가 미군 함대(항공모함 포함)의 존재를 보고했고, 혼란 속에서 나구모는 다시 어뢰로 재무장을 명령했다.
이 혼란 중에 미군의 어뢰 공격기 편대(VT-8, VT-6, VT-3)들이 순차적으로 일본 함대를 공격했으나, 대부분 일본군 제로 전투기와 대공포화에 의해 격추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공격으로 일본군 전투기들이 저공으로 끌려내려간 사이, 상공에는 엔터프라이즈와 요크타운에서 발진한 급강하 폭격기 편대가 접근하고 있었다.
오전 10시 22분경, 웨이드 매클러스키 해군 소령이 지휘하는 SBD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들이 일본 항공모함 아카기, 카가, 소류를 동시에 급강하 폭격했다. 세 척의 항모는 갑판 위에 재급유 및 재무장 중인 항공기와 폭탄, 연료가 즐비한 상태에서 직격탄을 맞아 대파되어 침몰했다.
생존한 유일한 일본 항공모함 히류는 야마구치 다몬 소장의 지휘 아래 반격에 나서 요크타운에 폭탄 2발과 어뢰 2발을 명중시켜 중파시켰다. 그러나 오후 5시경 미군 급강하 폭격기들이 히류를 발견하여 폭격했고, 히류도 치명타를 입고 6월 5일 새벽 침몰했다.
6월 7일, 손상된 요크타운이 예인 중이던 때 일본 잠수함 I-168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
결과 및 의의
일본 제국 해군은 진주만을 공격했던 주력 항공모함 4척과 중순양함 미쿠마 1척을 잃었고, 숙련된 조종사와 정비 인력을 다수 상실했다. 미국은 항공모함 요크타운과 구축함 해먼 1척을 잃었다.
미드웨이 해전은 태평양 전쟁의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일본 해군은 이후 공세 작전을 수행할 능력을 상실하였고, 전쟁의 주도권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군사 역사학자 존 키건은 이 해전을 "해전 역사상 가장 놀랍고 결정적인 타격"이라고 평가했으며, 해전 역사학자 크레이그 사이먼즈는 살라미스 해전, 트라팔가르 해전, 쓰시마 해전과 더불어 세계사에서 가장 중대한 해전 중 하나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