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뮐하우젠

뮐하우젠(독일어: Mühlhausen, 공식 명칭 Mühlhausen/Thüringen)은 독일 중부 튀링겐주(Thüringen)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이다. 운스트루트-하이니히군(Unstrut-Hainich-Kreis)의 군청 소재지이며, 운스트루트(Unstrut) 강을 끼고 발달하였다. 지리적으로는 튀링겐 분지(Thüringer Becken)의 평탄한 비옥한 지역에 자리하며, 독일의 지리적 중심점으로 알려진 니더도를라(Niederdorla)에서 남쪽으로 약 5km 떨어져 있다. 주도인 에어푸르트(Erfurt)에서 북서쪽으로 약 50km, 카셀(Kassel)에서 동쪽으로 약 65km 지점에 있다.

역사

뮐하우젠의 기원은 게르만족의 촌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헌상 최초의 기록은 967년으로, 오토 2세(Otto II)가 아내 테오파누(Theophanu)에게 이 지역을 하사한 것과 관련하여 등장한다. 이후 1135년에 '빌라(villa)'로 처음 언급되며 정착지에서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12세기 초에는 헤센 방향과 에어푸르트 방향을 잇는 중요한 교역로인 헤센베크(Hessenweg)를 따라 '구시가지(Altstadt)'가 조성되었고, 1170년 이후 성벽이 축조되었다.

13세기 중반, 시민들은 황제의 지배에서 점차 독립하여 1251년부터 자유제국도시(Freie Reichsstadt)로 불리게 되었다. 1286년에는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에 가입하였다. 중세 후기에는 직물과 대청(woad) 등 장거리 무역을 통해 번영을 누렸으며, 1500년경 인구 약 1만 명으로 튀링겐 지역에서 에어푸르트 다음으로 큰 도시가 되었다. 1224년에 제정된 '뮐하우젠 법전(Mühlhausen Law Book)'은 독일어로 작성된 가장 오래된 법전으로 알려져 있다.

종교개혁 시기에는 토마스 뮌처(Thomas Müntzer)가 1524년부터 이 도시에서 설교하며 재세례파(Anabaptist) 운동을 전개하고 봉건 제후에 대항하는 독일 농민 전쟁(1524~1525)을 주도하였다. 뮌처는 1525년 5월 27일 도시 성벽 밖에서 처형되었다. 이후 도시는 특권을 일부 상실하고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802년 프로이센에 편입되었으며, 1816년 프로이센 작센주(Provinz Sachsen)에 포함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독일민주공화국)의 일부가 되었고, 1975년부터 1991년까지 '토마스 뮌처 시(Thomas-Müntzer-Stadt)'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튀링겐주에 속하게 되었다.

문화와 건축

뮐하우젠은 중세 도시 구조가 잘 보존된 곳으로 유명하다. 내부 성벽 안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그리고 외곽 성벽 사이의 교외 지역으로 구성된 역사적 도심은 약 50헥타르에 달하며, 독일에서 가장 큰 중세 도심 중 하나로 꼽힌다. 고딕 양식의 교회 11곳, 시민 주택, 그리고 거의 완전하게 보존된 성벽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13세기 초기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장크트블라시우스 교회(Divi-Blasii-Kirche)가 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가 1707년부터 1708년까지 이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크트마리아 교회(Marienkirche)는 14세기 초 고딕 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튀링겐에서 에어푸르트 대성당 다음으로 큰 교회이자 튀링겐에서 가장 높은 첨탑(86m)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1310년 이후 건축된 시청(Rathaus), 1304년에 처음 언급된 시장 건물 브로트라우베(Brotlaube) 등도 주요 건축 유산이다.

또한 1380년에 처음 언급된 유대교 회당이 있으며, 1938년 수정의 밤(Kristallnacht) 때 손상되었으나 독일에서 드물게 완전히 파괴되지 않고 남아 1998년에 다시 봉헌되었다.

경제와 산업

역사적으로 섬유, 기계, 전기 공학 등이 주요 산업이었다. 현재는 농업이 지역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특히 절임, 소금에 절인 양배추, 사과소스 등 통조림 식품 생산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1908년부터 생산된 '뮐하우저 플라우멘무스(Mühlhäuser Pflaumenmus)'라는 자두잼이 유명한 지역 특산품이다. 독일 통일 이후 많은 공장이 문을 닫아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으며, 튀링겐주 내에서도 실업률이 높은 편에 속한다.

교통

뮐하우젠은 1870년 개통된 고타(Gotha)–라이네펠데(Leinefelde) 노선의 철도로 연결되어 있다. 튀링겐에서 아우토반(Autobahn)에 직접 연결되지 않은 가장 큰 도시로, 남쪽의 아우토반 4호선과 북쪽의 아우토반 38호선까지 각각 약 30km 거리에 있다. 1898년부터 1969년까지는 시내 노면전차가 운행되었다.

인구

2014년 기준 인구는 약 33,200명이었으며, 2024년 말 기준 약 36,300명으로 집계되었다. 면적은 2019년 이후 인접 지자체의 통합으로 확대되어 약 150.5km²에 이른다. 튀링겐주에서 아홉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출신 인물

뉴욕 브루클린 다리(Brooklyn Bridge)의 설계자로 유명한 토목공학자 존 A. 로블링(John A. Roebling, 1806~1869)과 19세기 프로이센의 영향력 있는 건축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슈튈러(Friedrich August Stüler, 1800~1865)가 이 도시에서 태어났다.

자매 도시

프랑스의 투르쿠앵(Tourcoing), 독일의 에슈베게(Eschwege)와 뮌스터(Münster), 러시아의 크론슈타트(Kronstadt), 미국의 색슨버그(Saxonburg)와 자매 결연 관계를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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