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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황후

문헌황후(文獻皇后)는 중국 수나라(隋)의 최초 황후이며, 수 문제(隋文帝) 양견(楊堅)의 정실부인이다. 본명은 독고가라(獨孤伽羅, 543년~602년)로, 문헌황후는 그녀에게 붙여진 시호이다.

가계와 출신

문헌황후 독고가라는 서위(西魏)의 선비족 대도독이자 대사마였던 독고신(獨孤信)의 7녀로 태어났다. 독고신의 가문은 당시 북조의 최고 권력 가문 중 하나로, 큰딸은 북주 명제(北周明帝) 우문육(宇文毓)의 황후가 되었고, 4녀는 당국공 이병(李昞)에게 시집가 당 고조(唐高祖) 이연(李淵)의 어머니가 되었다.

생애

독고가라는 14세 때 대사공 양충(楊忠)의 아들 양견과 가례를 올렸다. 혼인 당시 그녀는 양견에게 자신 이외의 여인에게서 자식을 보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었으며, 양견은 다섯 명의 아들을 모두 독고가라에게서 얻었다고 전해진다.

581년 양견이 북주를 무너뜨리고 수나라를 세우려 할 때, 독고가라는 밀서를 보내 결단을 촉구하였다. 밀서를 받은 양견이 결심을 굳히고 수나라를 건국했으며, 독고가라는 초대 황후가 되었다. 그녀는 양견이 국사를 논할 때 정책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고, 조정 대신들은 양견과 독고가라를 가리켜 '두 황제'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독고가라는 질투심이 매우 강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양견이 울지형(尉遲逈)의 딸을 총애하자 그녀를 처형하고 잘린 머리를 상자에 담아 양견에게 보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또한 그녀를 '일개 부인'이라고 표현했던 재상 고경(高熲)에게 사약을 내리기도 하였다. 남편뿐 아니라 첩을 둔 신하와 아들들에 대해서도 엄격히 대처하였다.

그녀는 태자 양용(楊勇)이 애첩 운소훈(雲昭訓)을 총애하고 태자비 원씨가 급사한 일을 계기로 양용을 폐위시키고, 자신의 비위를 잘 맞춘 차남 양광(楊廣)을 태자로 세우도록 양견에게 건의하였다. 이후 양광은 수 양제(隋煬帝)가 되었다.

사망과 평가

독고가라는 602년 8월 영안궁에서 사망하였으며, 향년 60세였다. 그녀가 죽은 뒤 양견은 중병에 걸렸을 때 독고가라가 살아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탄하였다고 전해진다.

정치적으로는 공과 사를 구분하고 친척이라도 죄를 지으면 용서하지 않는 엄격한 태도를 보였으며, 백성들에게는 인자한 황후로 평가받았다. 한편 그녀의 일부일처 강요와 태자 폐립 과정에 관여한 행적에 대해서는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측면이 있다.

참고

문헌황후의 시호 '문헌(文獻)'은 사후에 부여된 황후 시호이다. 동일한 '문헌'이라는 시호를 가진 인물로는 원나라 문종(文宗)의 생모에게 추증된 문헌소성황후(文獻昭聖皇后)가 별도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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