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범(文昌範, 1870년 ~ 1938년)은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함경북도 경원군 유덕면 죽기동에서 출생하였으며, 1877년경 부친을 따라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인근의 쁘질로프카(육성촌)로 이주하였다. 러시아어에 능통하였고, 노서아학교를 졸업한 후 한인 사회의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1908년 니콜리스크-우수리스크의 타레스 부락에 민족교육 기관인 광동학교(光東學校)를 설립하여 1916년까지 운영하였으며, 연해주 지역 한글신문인 《해조신문》과 《대동공보》의 발간에도 기여하였다. 1911년 권업회가 조직되자 우수리스크지회 대표 및 교육부장으로 참여하여 한인 사회의 권익 증진과 독립운동에 힘썼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전로한족회중앙총회(全露韓族中央總會)의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1919년 2월 만주 길림에서 발표된 대한독립선언서(무오독립선언서)에 서명자 39인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같은 해 3·1운동에 즈음하여 전로한족회중앙총회를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로 개편하고 의장에 취임하였다. 대한국민의회는 국내외를 통틀어 임시정부 성격을 띤 최초의 조직으로 평가되며, 당시 연해주 한인들 사이에서 문창범은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대중적 지지를 받았다.
1919년 3월 17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 당국에 사전 통고 없이 전격적으로 만세 시위를 전개하여 러시아 지역 3·1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교통총장(교통부 총장)에 추대되었으나 부임하지는 않았다. 같은 해 5월 한명서·김하석·남만춘 등과 함께 고려공산당을 조직하였고, 노령에 군관학교를 창설하여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1921년에는 만주 지역의 독립군 유격대를 편성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사망 시기에 관하여는 이설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934년 8월 5일 상하이에서 밀정에 의해 피살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위키백과 등 일부 자료는 1938년 10월 10일로 기재하고 있어 정확한 사망 경위와 시기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2015년 12월에는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의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2025년 광복 80주년을 맞아 '대한국민의회 문창범 의장 기념사업회'가 출범하는 등 그의 독립운동 업적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