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文宗, 1019년 12월 5일(음력 11월 8일) ~ 1083년 9월 2일(음력 7월 29일))은 고려(高麗)의 제11대 국왕(재위: 1046년 ~ 1083년)이다. 휘는 휘(徽), 자는 성명(成命), 시호는 문정공효대왕(文貞恭孝大王), 묘호는 문종(文宗)이다.
생애 및 즉위
현종(顯宗)과 원성왕후 김씨(元成王后 金氏)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022년(현종 13년) 강릉대군(江陵大君)에 봉해졌고, 1031년(덕종 원년) 왕태제(王太弟)로 책립되어 왕위 계승권을 공인받았다. 1046년(정종 2년) 정종이 후사 없이 죽자 즉위하였다.
주요 치적 및 정책
1. 중앙 집권 체제 강화 및 문치주의 구현 문종은 무신 정권 이전 고려 전기의 전성기를 이끈 군주로 평가받는다. 그는 유교 정치 이념을 바탕으로 문치(文治)를 표방하며, 과거 제도를 정비하고 문신 우대 정책을 펼쳐 중앙 집권 체제를 공고히 했다. 1055년(문종 9년)에는 국자감(國子監)을 설치하고 5경 박사(五經博士)를 두어 유학 교육을 진흥시켰으며, 1062년(문종 16년)에는 《고려사》 편찬의 기초가 된 《국사(國史)》 편찬을 명하였다.
2. 법제 정비: 《신편율령(新編律令)》 반포 1047년(문종 1년) 당나라의 율령을 바탕으로 고려의 실정에 맞게 고친 《신편율령》 50권을 반포하여 법치주의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는 고려 율령법의 완성으로 평가된다.
3. 지방 제도 정비: 5도 양계제 완성 지방 행정 구역을 5도(五道: 양광도, 경상도, 전라도, 교주도, 황해도)와 양계(兩界: 서북면, 동북면)로 재편하여 지방 통제력을 높였다. 또한 주현(州縣)에 파견되는 중앙 관리인 안렴사(按廉使)와 교주도(交州道) 등의 제도를 정비하였다.
4. 외교 관계: 송·요와의 사대 외교 및 자주성 확보 송(宋)과 요(遼) 양국에 조공하고 책봉을 받는 전통적인 사대 외교를 유지하면서도, 고려의 자주적 입장을 견지했다. 특히 요와의 관계에서 '형제국' 외교를 통해 평등한 외교 관계를 추구했으며, 1074년(문종 28년) 요의 연호인 대강(大康) 대신 고려 독자의 연호인 '대강(大康)'을 사용하다가 요의 항의를 받고 폐지하는 등 자주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보였다.
5. 불교 진흥 및 대장경 조성 독실한 불교 신자로서 불교를 국교로 장려했다. 1046년 즉위 직후 개경에 흥왕사(興王寺)를 창건하고, 1063년(문종 17년)에는 고려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 조성을 시작하여 1087년(선종 4년) 완성을 보았다. 또한 1070년(문종 24년)에는 개경 보제사(普濟寺)에서 팔관회(八關會)를 부활시키고 연등회(燃燈會)를 성대히 거행하는 등 국가적 차원의 불교 의례를 정비했다.
6. 경제 및 문화 발전 농업 생산력 증대를 위해 수리 시설을 정비하고, 화폐 주조(건원중보, 삼한중보 등)를 통해 화폐 경제를 활성화하려 했다. 청자 제작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상감청자의 태동기적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개경과 서경(평양)을 중심으로 상공업이 발달했다.
가족 관계
- 부왕: 현종(顯宗)
- 모후: 원성왕후 김씨(元成王后 金氏)
- 왕비:
- 인예왕후 이씨(仁睿王后 李氏) - 이자연(李子淵)의 딸
- 인경왕후 김씨(仁敬王后 金氏) - 김인위(金仁位)의 딸
- 정숙원비 유씨(貞淑院妃 柳氏) - 유적(柳勣)의 딸
- 기타 후궁 다수
- 자녀: 순종(順宗), 선종(宣宗), 숙종(肅宗) 등 13남 21녀를 두었다. 세 아들이 차례로 왕위를 계승했다.
평가 및 의의
문종은 고려 전기의 정치, 경제, 문화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시기의 군주로 평가된다. 《고려사》 열전에서는 "성품이 자비롭고 어질며 학문을 좋아하고 글재주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가 구축한 문신 중심의 중앙 집권 체제와 법제, 문화적 토대는 이후 고려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말년에 왕자들 간의 세력 다툼과 문신 귀족 세력의 비대화로 인한 폐단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망 및 능묘
1083년(문종 37년) 7월 29일 개경 만녕전(萬寧殿)에서 65세로 승하했다. 능은 경기도 개풍군에 위치한 경릉(景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