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가학(文可學, ? ~ 1406)
문가학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실존한 인물로, 도사(道士)이자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생년은 전하지 않으며, 1406년(조선 태종 6년) 음력 12월 5일 처형되었다. 성별은 남성이며, 고려와 조선을 국적으로 하였다.
생애 및 활동
문가학에 관한 기록은 주로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에 남아 있으며, 민간 설화와 함께 전승된다. 문익점(文益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일부 자료에서 문가학이 문익점의 조카 또는 동생의 후손이라고 언급되나, 정확한 가계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하다.
젊은 시절 둔철산 정취암(또는 용방사)에서 공부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관련 설화에 의하면, 정월 초하루에 절의 승려들이 요물을 피해 도망가자 문가학이 혼자 남아 요물을 잡았으며, 그 요물이 여우로 변해 둔갑술 비술서를 건네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 태종 시기에 가뭄이 들자 광주목사가 문가학에게 기우를 청했고, 그가 비를 내리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태종 2년(1402년)에는 예문관 직제학 정이오(鄭以吾)의 천거로 왕명을 받아 비를 내렸으며, 이후 여러 차례 기우제를 지냈다. 다만 1403년에서 1405년 사이의 기록에 따르면 비가 내렸으나 겨우 먼지를 적실 정도에 그친 경우도 있었다.
문가학은 평소 "젊어서부터 《신중경》(神衆經)을 외어 그 도를 얻었다"고 주장하였으나, 생긴 모습은 얼빠진 사람 같았다고 《태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최후
1406년, 문가학은 백성들을 모아 "천병(天兵)과 신병(神兵)을 부를 수 있으니 인병(人兵)만 모이면 거사를 치를 수 있다"고 선동하며 역모를 꾸몄다. 이에 생원 김천(金蕆), 전 봉상시 주부 임빙(任聘), 생원 조방휘(趙方輝), 전 부정 조한생(趙漢生), 전 소윤 김양(金亮) 등이 가담하였다. 그러나 임빙의 외조부인 조곤(趙昆)이 이 음모를 고발하여 무리가 발각되었다.
태종은 문가학을 "미친 놈"이라고 일컬었으며, 문가학을 비롯한 여섯 명의 주모자는 저잣거리에서 환형(轘刑, 거열형)에 처해졌다. 문가학의 가족(젖먹이 아들을 포함)도 교형(絞刑)에 처해졌다.
관련 설화 및 전승
문가학의 이야기는 민간 설화와 학술 연구의 소재가 되고 있다. 산청 지역(경상남도)을 중심으로 정취암 및 용방산과 관련된 전설이 전승되며, 일부 설화에서는 문가학을 고려의 충신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학술적으로는 문가학 이야기의 허구화 양상과 가능세계 의미론 등을 중심으로 연구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