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샤이바니(페르시아어: محمد شیبانی, 본명: 아불파트 무함마드 샤이바니 칸 빈 샤두바크 술탄, 1451년~1510년 12월 2일)는 16세기 초 중앙아시아의 군주로, 우즈베크 칸국의 제3대 칸이자 샤이바니 왕조의 창시자이며 부하라 칸국의 초대 칸으로 간주된다. 티무르 제국을 멸망시키고 중앙아시아의 트란스옥시아나(마 와라 알나흐르) 지역에 우즈베크 세력의 지배를 확립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출생과 배경
무함마드 샤이바니는 1451년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우즈베크 칸국의 초대 칸인 아불하이르 칸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샤 부다크 술탄, 어머니는 옛 사만 왕조의 후예인 아크 쿠지 베굼이다. 부계로는 칭기즈 칸과 그의 장남 주치의 직계 후손인 보르지긴 가문에 속한다. 페르시아어와 차가타이어(튀르크어)에 능통했으며 역사와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초기 경력과 세력 확장
샤이바니는 처음에 사마르칸트를 지배하던 티무르 제국 휘하의 장군으로 복무하며 약 3,000명의 병력을 지휘했다. 티무르 제국과 모굴리스탄 칸국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자 티무르 제국을 배신하고 모굴리스탄 편으로 전향했다. 1488년 치르치크강 전투에서 모굴리스탄이 승리한 공로로 투르키스탄 일대의 영지를 하사받았다. 이후 독자적인 군벌로 성장하여 1500년 모굴리스탄의 지원을 받아 사마르칸트를 정복했다.
티무르 제국 멸망과 부하라 칸국 건설
1501년 사마르칸트를 재점령하여 완전히 장악하고 같은 해 부하라를 정복했다. 1507년에는 티무르 제국의 남부 수도이자 문화·경제의 중심지였던 헤라트를 함락시켜 티무르 제국을 사실상 멸망시켰다. 이 과정에서 티무르 왕조의 마지막 후예인 바부르(훗날 무굴 제국의 창시자)를 여러 차례 격퇴했다. 이후 북쪽으로 진군하여 1508년~1509년에 카자흐 칸국을 약탈했으나, 1510년 카심 칸이 이끄는 카자흐 군대에 대패했다.
메르브 전투와 최후
1510년, 사파비 왕조의 샤 이스마일 1세가 호라산으로 진군해왔다. 샤이바니는 카자흐 칸국과의 전쟁과 하자라족 토벌전에서 병력을 소모한 상태였으며 주력군이 사마르칸트에 떨어져 있어 대응이 어려웠다. 그는 메르브 요새로 후퇴하여 농성했으나, 이스마일 1세의 거짓 후퇴 유인 전술에 넘어가 요새 밖으로 나왔다가 키질바시 정예군에게 대패하여 전사했다. 향년 58~59세였다.
승리한 이스마일 1세는 샤이바니의 두개골로 황금 술잔을 만들어 바부르에게 선물로 보냈으며, 시체는 토막 내어 사마르칸트 등 주요 도시의 성문에 전시했다고 전해진다. 샤이바니 사후 왕위는 그의 아들이 아닌 형제와 사촌들이 계승하여 샤이바니 왕조는 1598년까지 부하라 칸국을, 1687년까지 히바 칸국을 다스렸다.
평가
무함마드 샤이바니는 티무르 제국을 멸망시키고 중앙아시아에 우즈베크 세력의 지배를 확립한 정복자로 평가된다. 그의 통치는 우즈베크인들이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에 정착하고 지배 세력으로 부상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학식이 깊은 군주로도 알려져 있으며, 페르시아어와 차가타이어에 능통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기를 애독하는 등 역사와 문학에 조예가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