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피화(戊辰被禍)는 1388년(고려 우왕 14년) 음력 정월에 발생한 고려 말기의 정치적 숙청 사건이다. '무진'은 해당 연도의 간지(干支)를, '피화'는 재앙을 입는다는 의미로, 무진년에 일어난 화란(禍亂)이라는 뜻에서 이 명칭이 붙었다. '정월지주(正月之誅)'라고도 불린다.
이 사건은 고려 제32대 국왕 우왕(禑王)의 명령을 받은 최영(崔瑩)과 이성계(李成桂) 등이 권문세족 이인임(李仁任) 일파를 실각시키고 임견미(林堅味), 염흥방(廉興邦) 등을 숙청한 정변이다. 발단은 염흥방의 가노(家奴) 이광(李光)이 전 밀직부사 조반(趙胖)의 토지를 강제로 빼앗은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분노한 조반이 사병을 이끌고 이광을 참수하고 집을 불태우자, 염흥방은 조반에게 모반 혐의를 씌워 체포하고 고문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우왕이 최영 및 이성계와 협의하여 이인임 일파를 제거하기로 결정하면서 사건이 전개되었다.
그 결과 임견미, 염흥방, 도길부(都吉敷), 이성림(李成林), 왕복해(王福海) 등 수십 명의 권문세족이 처형되었고, 이인임은 경산부(京山府)로 유배되었다. 이들의 가족과 연좌된 자들까지 포함하여 50여 명이 추가로 참수되었으며, 가신과 종들 1,000여 명도 처형되었다. 이후 최영은 문하시중, 이성계는 수문하시중, 이색(李穡)은 판삼사사에 임명되어 최영-이성계 연립정권이 성립되었다.
이 사건은 고려 말기 정치 구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인임 일파는 부패했으나 고려 왕조를 지지하던 마지막 보루 세력이었는데, 이들이 제거됨으로써 불과 6개월 후 발생한 위화도 회군(威化島回軍) 이후 이성계가 신진사대부와 결합하여 고려의 권력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우왕은 이인임 세력을 성공적으로 제거하였으나, 이후 이성계에게 폐위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