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친위대(武裝親衛隊, Waffen-Schutzstaffel, Waffen-SS)는 나치 독일의 준군사조직인 친위대(Schutzstaffel, SS)의 무장 전투 조직이다. 독일어 명칭에서 '바펜(Waffen)'은 '무장한'을 의미하며, SS 산하의 전투 부문이라는 뜻을 지닌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독일 육·해·공군(국방군, Wehrmacht)과 별도로 운영된 사실상의 제4의 군사 조직으로 기능했다.
기원과 창설 배경
무장친위대의 기원은 아돌프 히틀러의 개인 경호 부대에서 비롯되었다. 나치당 내에서 돌격대(Sturmabteilung, SA)가 급속히 성장하여 히틀러의 통제에서 벗어나자, 히틀러는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무장 경호조직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따라 SS가 창설되었고, 1929년 하인리히 힘러가 SS전국지도자로 취임하면서 SS는 당내 엘리트 군단으로 확대·개편되었다.
1934년 6월 '장검의 밤 사건'(룀 숙청) 당시 SS가 SA 지도부를 제거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SS의 위상은 크게 강화되었다. 이후 SS 내에서 군사적 전투 임무를 담당하는 부대가 조직적으로 편성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무장친위대로 발전하였다. 무장친위대의 총사령관은 SS전국지도자 하인리히 힘러였으나, 전쟁 중 전투 지휘는 독일 국방군 최고사령부(OKW)의 지휘 아래 이루어졌다.
조직 규모와 활동
무장친위대는 창설 초기 소규모의 경호 및 정예 부대에 불과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이 진행되면서 급격히 확대되어 1944년 기준 약 90만 명의 병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 기간 중 38개 사단 규모로 성장했다. 무장친위대는 최신 무기와 우수한 장비를 우선적으로 지급받았으며, 정예 부대로서 높은 전투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나, 동시에 잔혹한 행위로도 악명이 높았다.
종전 시점을 기준으로 무장친위대 병력의 상당 부분(약 60%)은 독일인이 아닌 점령지 출신의 의용병 또는 징집병으로 구성되었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독일 점령지 및 비점령지에서도 외국인 병력이 모집되었다.
전쟁 범죄와 전후 평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무장친위대는 전쟁 범죄와 인도에 반한 범죄에 가담한 조직으로 간주되어 범죄 단체로 규정되었다. 무장친위대의 잔혹 행위에는 유대인 및 민간인 대상의 학살, 점령지에서의 초토화 작전, 빨치산 토벌 명목의 무고한 주민 처형 등이 포함된다.
다만 전쟁 초기에는 국방군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군기 하에 운영되었으며,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민간인에 대한 잔혹 행위가 증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장친위대 소속 징집병 중 일부는 강제 배치된 경우가 있어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것을 면하기도 했다.
전후 서독에서 독일군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국방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무장친위대가 전쟁 범죄의 주요 책임 주체로 부각되었고, 이로 인해 국방군이 순수하게 전투에만 전념했다는 인식이 형성되기도 했으나, 이는 후대의 역사 연구를 통해 논쟁적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무장친위대는 1945년 독일의 항복과 함께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