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타총(村田銃, Murata jū)은 1880년 메이지 13년식 단발총으로 일본 제국 육군에 채택된, 일본 최초의 국산 설계 제식 소총이다. '13년식'이라는 명칭은 메이지 천황 재위 13년에 채택되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개발 배경
무라타총의 개발은 이를 뒷받침할 산업 구조를 구축하는 과정을 포함했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국산 무기를 생산하기 이전까지 일본 제국 육군은 보신 전쟁 시기부터 프랑스의 샤스포, 영국의 스나이더-엔필드, 미국의 스펜서 연발총 등 다양한 수입 화기에 의존했다. 보신 전쟁의 전투 경험은 표준화된 설계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일본군은 프랑스의 그라 소총의 금속 탄약통 설계에 주목했다. 이 소총은 일본 제국 육군 보병 소령 무라타 쓰네요시(村田経芳)에 의해 설계되었다.
주요 제원과 파생형
최초 모델인 13년식은 11mm 구경의 단발 볼트액션 소총이었다. 이후 부품과 총검 돌기 등의 외형적 개선을 거쳐 1885년 18년식으로 개량되었고, 같은 해 관형 탄창과 8mm 구경을 채택한 22년식 연발총이 개발되어 1889년에 도입되었다. 22년식은 무연 화약을 사용한 최초의 일본군 소총으로 기록된다.
무라타총은 정확하고 기계적으로 신뢰할 수 있었으며 추운 날씨에서도 잘 작동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다만 품질이 보통 수준인 비교적 연한 강철을 사용하는 단점이 있었고, 볼트 뭉치 부품은 빈번한 유지보수를 필요로 하는 설계상 결함이 있었다.
운용 역사
무라타총은 동학 농민 혁명, 청일 전쟁, 의화단 운동, 러일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시베리아 출병 등에 사용되었다. 청일 전쟁 당시 일본 제국 육군의 단 두 개 사단만이 22년식 연발총으로 무장했으며 나머지는 구식 무라타 단발총을 사용했다. 러일 전쟁 후기에는 생산량 부족으로 인해 예비 보병 부대 일부가 여전히 22년식 무라타총을 장비하기도 했다.
청일 전쟁의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군은 더 현대적인 무연 화약을 사용하는 아리사카 30년식 소총으로 제식을 교체하기로 결정했으며, 이후 무라타총은 점차 퇴역했다. 퇴역한 일부 소총은 총류탄 발사기나 민간용 산탄총으로 개조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일본 국민의용대 일부가 이 총을 비롯한 구식 화기로 무장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사용 국가
무라타총은 일본 제국 외에도 조선(별기군에 200정 공급), 청나라(신건육군), 중화민국(일부 군벌 세력), 만주국, 몽강연합자치정부, 필리핀 제1공화국 등에서 사용되었다.
평가
무라타총은 일본이 서구 열강에 맞서 군사 현대화를 추진하던 시기의 산물로, 일본 화기 산업의 자립을 상징하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동시에 당대 일본의 산업·기술 수준의 한계를 반영하는 무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