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마사(일본어: 村正, むらまさ)는 일본 무로마치 시대(14~16세기) 이세국 구와나(현재의 미에현 구와나시)에서 활동한 실존 도공, 또는 그가 제작한 일본도를 가리킨다. 통칭 센고 무라마사(千子村正)라고도 불리며, 최소 3대에 걸쳐 명맥이 이어진 것으로 확인된다.
기원 및 역사
무라마사파의 정확한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무라마사 명문(銘文)이 새겨진 도검은 1501년(분키 원년)의 것으로, 학계에서는 이 검을 만든 장인을 초대 무라마사로 본다. 그보다 이전의 무라마사가 존재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를 입증할 자료는 부족하다. 무라마사는 마사무네(正宗, 13세기)의 제자였다는 속설이 있으나, 두 인물 간에는 수백 년의 시대 차이가 있어 학계에서는 이를 부정한다. 다른 설로는 교토의 명장 헤이안조 나가요시(平安城長吉)의 문하에서 수학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나 확실하지 않다.
작풍(作風)의 특징
무라마사파 도검의 가장 큰 특징은 실전 지향적인 예리한 절삭력에 있다. 독특한 특징으로는 다음이 꼽힌다.
- 무라마사바(村正刃): 파도 모양의 군노메미다레(互の目乱れ)라 불리는 해몬(刃文, 담금질 무늬)으로, 앞면과 뒷면의 무늬가 거의 대칭을 이루는 '표리 맞춤'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는 기술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기법으로, 무라마사파에서만 볼 수 있는 독자적인 특징으로 감정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 무라마사나카고(村正中心): 칼자루에 끼우는 나카고(中心, 자루 몸통) 부분이 물고기 배 모양(타나고바라)을 하고 있다.
도쿠가와 가문과의 관계
무라마사는 뛰어난 예리함 때문에 미카와(三河) 지방의 사무라이들, 특히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그 선조들의 가신들에게 널리 애용되었다. 그러나 도쿠가와 가문에 불행이 발생할 때마다 무라마사가 관련된 우연이 겹치면서 '요도(妖刀)'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 이에야스의 할아버지 마쓰다이라 기요야스가 가신의 잘못으로 무라마사에 살해됨
- 이에야스의 아버지 마쓰다이라 히로타다가 무라마사에 찔려 부상
- 이에야스의 장남 마쓰다이라 노부야스가 할복할 때 가이샤쿠(참수)에 무라마사가 사용됨
에도 시대 후기로 갈수록 막부 학자 아라이 하쿠세키 등의 언급을 통해 무라마사는 '불길한 검'으로 인식되었고, 막부 말기(1853~1868)에는 도쿠가와 막부에 반대하는 유신지사(시시)들이 반역의 상징으로 무라마사를 탐닉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는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위조 무라마사도 많이 제작되었다.
다만, 도쿠가와 이에야스 본인이 직접 두 자루의 무라마사를 소장했으며, 그중 한 자루는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에 가보로 전해져 현재 도쿠가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도쿠가와 가문에 저주를 내리는 요도'라는 속설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지정 현황
무라마사파의 도검 중 국보나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현재까지 없다. 유일하게 중요미술품으로 지정된 것은 '묘호 무라마사(妙法村正)'로, 도쿄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검에는 1513년(에이쇼 10년)의 명문과 함께 법화경의 주문(묘호렌게쿄)이 새겨져 있다.
대중문화 속의 무라마사
무라마사는 18~19세기 가부키 연극을 통해 '한번 뽑히면 피를 보지 않으면 칼집에 돌아가지 않는 저주받은 검'으로 묘사되기 시작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RPG, 애니메이션, 게임 등 각종 서브컬처에서 강력한 마검(魔劍) 또는 요도(妖刀)로서 폭넓게 등장하고 있다. 위저드리(Wizardry) 시리즈를 비롯한 다수의 게임에서 최강급 무기로 등장한 것이 현대적 인지도 확산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