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은 사람의 사체를 매장한 시설물이다. 묘(墓) 또는 분묘(墳墓)라고도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무덤을 "사람의 사체를 매장한 시설물"로 정의하고 있으며, 사체를 땅에 묻어 처리하는 시설이자 인간적 지성과 감성이 결합되면서 기념적 형상물로 발전한 것으로 설명한다.
어원
무덤이라는 말은 중세국어에서도 '무덤'으로 나타난다. 이는 동사 '묻다[埋]'의 어간 '묻'에 명사화 접미사 '-엄'이 합쳐진 형태로, 맞춤법 규정에 따라 '무덤'으로 표기된 것이다. 이와 유사한 예로 '죽(死)+엄'이 '주검'으로 표기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와 같은 어원적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개념과 용어 구분
무덤은 죽은 사람의 시신을 매장하는 곳을 가리킨다. 안치한 시신 위로 흙을 높게 덮은 것을 분(墳)이라 하고, 평평하게 만든 것을 묘(墓)라고 부른다. 둘을 합쳐 분묘(墳墓)라 한다. 일반적으로 무덤에는 묘비를 세워 고인을 추모한다.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무덤을 지칭하는 명칭은 형태와 성격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 능(陵): 왕과 왕비의 무덤
- 원(園): 왕의 친척(왕세자, 부모, 후궁 등)의 무덤
- 묘(墓): 그 외의 사람이 묻힌 무덤
- 총(塚): 주인을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가치를 지닌 무덤
- 분(墳): 주인도 알 수 없고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고 하기 어려운 무덤
무덤의 기원
무덤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대체로 두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사체의 처리물이라는 관점으로, 사람이 죽으면 부패하기 시작하므로 어떤 방법으로든 사체를 처리해야 했고 그 방법의 하나로 매장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람의 기념적 형상물이라는 관점으로, 공동생활의 일원이 죽으면 슬픈 감정과 그리운 정이 생겨 사자(死者) 대신 그를 추모할 기념적 형체로서 무덤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두 견해 사이에는 시간적 선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동물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시대에는 단순한 사체 처리의 한 방법으로 무덤을 만들다가 차차 인간적 지성과 감성이 열리면서 기념적 의미가 부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체 매장으로 무덤을 만들게 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고고학적 조사에 따르면 동양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무덤의 흔적이 나타난다. 중국 북경 부근의 주구점(周口店) 상정동유적(上頂洞遺蹟)은 약 1만 8,000년 전의 것으로, 동양에서 발견된 가장 오랜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무덤의 종류
무덤은 그 형태나 재료에 따라 여러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봉분의 형태에 따라서는 방형분(方形墳), 원형분, 전방후원분 등으로 나뉜다. 봉분의 재료에 따라서는 토장묘(土葬墓), 지석묘(支石墓), 적석총(積石塚), 석총, 토총, 전축분(塼築墳) 등으로 구분된다. 유구(遺構)의 재료에 따라서는 석관묘, 석곽묘(돌덧널무덤), 목관묘, 목곽묘, 옹관묘, 도관묘(陶棺墓) 등으로 나뉜다.
한국 무덤의 시대별 변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의 무덤은 시대에 따라 다음과 같이 변천해 왔다.
신석기시대에는 토광묘, 옹관묘, 집단묘, 동굴묘 등이 있었으며 토광묘가 양적으로 가장 많았다. 청동기시대에는 토장묘 외에 중국 황하유역에서 발달한 토광묘, 그리고 지석묘, 석관묘, 석곽묘, 적석총 등 석총 계통의 무덤이 나타났다.
지석묘는 한국의 가장 독특하고 전통적인 무덤 형식으로, 지상에 커다란 돌을 괴어 올려놓은 구조를 지닌다. 한국은 동양 삼국 중 지석묘가 가장 많아 '지석묘의 나라'라고 일컬어진다.
삼국시대에는 나라별로 다양한 무덤 형식이 발달했다. 고구려에서는 적석총과 벽화고분, 백제에서는 전실분(前室墳)과 판석조석실분, 신라에서는 적석봉토분과 궁륭상천장식석실분, 가야에서는 장방형석실분, 그리고 영산강유역에서는 토축묘가 나타났다. 이 시기에는 순장(殉葬) 풍습이 있었으며,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에서는 247년, 신라에서는 502년에 국법으로 순장이 금지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왕릉이 축조되었고,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묘도 성행하였다. 고려시대에는 풍수지리사상이 더욱 철저해지고 부장품이 박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조선시대에는 유학사상의 영향으로 화장묘가 사라지고 중국식 토광묘가 일반화되었으며, 풍수지리사상이 더욱 보편화되었다.
무덤과 문화적 의미
무덤은 흔히 유택(幽宅)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사자가 저승에서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관념은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왔으며, 무덤을 지키고 가꾸는 조형과 조경의 전통이 발전하였다.
한국인의 무덤에 대한 의식은 크게 지석묘와 종교적 관념, 순장 풍습, 조상숭배와 계세사상(繼世思想), 풍수도참사상과의 결합 등 네 가지 측면으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풍수지리사상에서 무덤은 '음택(陰宅)' 또는 '산소'로 불리며, 좋은 자리에 조상을 모시면 조상의 음덕으로 자손이 발복한다는 믿음이 있어 왔다.
무덤과 관련된 속담으로는 '핑계 없는 무덤 없다', '처삼촌 무덤에 벌초하듯', '굽은 솔이 선산 지킨다' 등이 있다. 무덤은 시와 문학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했으며, 인생무상이나 추모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 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