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은 동아시아 한민족의 민족 종교인 무속(巫俗)에 종사하는 샤먼(Shaman)을 지칭하는 말이다. 통상적으로 여성 무속인을 뜻하며, 남성 무속인은 박수(博手) 또는 무격(巫覡)이라 별도로 부른다. 그 외에도 무인(巫人)·무(巫)·무녀(巫女)·단골·심방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개념과 역할
무당은 신령(神靈)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한다. 굿판에서 무당은 신령의 대리자로서 기능하며, 미래를 예언하는 예언 기능, 질병을 치료하는 치병(治病) 기능, 그리고 제의를 주관하는 사제(司祭)적 기능을 함께 갖는다. 역사적으로 조선시대에는 무당이 일종의 의사로 대우받은 기록도 존재한다.
분류
무당은 크게 강신무(降神巫)와 세습무(世襲巫)로 나뉜다.
- 강신무: 무병(巫病)이라고 불리는 신병(神病) 체험을 겪고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된 경우이다. 내림굿을 통해 일반인에서 무당으로 각성하며, 전통적으로 한반도 중부와 북부 지역에 주로 분포하였다.
- 세습무: 무당 집안에서 대대로 혈통을 따라 사제권을 계승하는 경우이다. 전통적으로 한반도 남부 지역(호남, 영남)에 분포하며, 호남에서는 '단골', 영남에서는 '무당', 제주도에서는 '심방'이라 불린다.
강신무는 신의 영력(靈力)에 기반하여 굿을 주관하는 반면, 세습무는 영력보다는 제의를 집행하는 사제권에 주력하는 차이를 보인다.
역사
무속에 관한 한반도 최고의 기록은 신라 제2대 남해왕 때(1세기 초)의 것으로, 불교가 전래된 4세기 후반보다 약 4세기 앞선다. 고대 부족 국가 시기에 '무(巫)'는 제의를 주재하고 정치를 수행하는 제정일치(祭政一致)의 통치자 기능을 하였으나, 사회가 분화되면서 제(祭)와 정(政)이 분리되어 무당은 사제 기능만을 담당하게 되었다.
고려시대(12세기 이후)에는 무속이 크게 성행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유교주의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민중 사이에서 무속이 광범위하게 유지되었다. 궁중에서도 국무당(國巫堂)을 두고 기우제와 각종 제의를 행하는 등 무속은 공적·사적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존재하였다.
현대에 들어 북한에서는 종교말살정책으로 무당의 전통이 거의 단절되었고, 남한에서는 박정희 정권 시기의 무속 탄압 정책의 영향으로 세습무는 줄어들고 강신무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어원
'무당'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무(巫)'는 한자어이며, '당(堂)'은 '집'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편, 제리 노먼(Jerry Norman)과 메이쭈린(梅祖麟)은 중국 복주(福州) 방언에서 무당을 뜻하는 'tong-'이 한자 '당(黨)'으로 차자(借字) 표기된 점을 들어, 오스트로아시아어족 기원설을 제기하였다. 국내의 최영애 교수는 이에 기반하여 우리말 '무당'의 '당'과 '단골(당골)'이 베트남어의 'dong-cot'(무당)과 동계어일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신앙적 특징
무속의 신관(神觀)은 다신적(多神的) 자연신관으로, 전국적으로 조사·집계된 무신(巫神)의 수는 273종에 달한다. 자연신 계통(천신·산신·용신 등)과 인신(人神) 계통(장군신·왕신 등)으로 구분되며, 우주는 천상·지상·지하의 삼계(三界)로 구성된다고 믿는다.
무당의 시조로는 바리공주(바리데기)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