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풍

몽골풍

몽골풍(蒙古風)은 고려 후기 원 간섭기에 고려 사회 전반에 걸쳐 유행했던 몽골의 풍습과 문화를 일컫는 용어이다. 13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중엽까지 고려와 원나라 사이의 활발한 인적·물적 교류를 통해 형성된 문화적 현상을 의미한다.

배경

고려가 원나라의 부마국(사위의 나라)이 되면서 양국 왕실 간의 교류가 빈번해졌고, 고려의 왕자들이 원나라 대도(현재의 베이징)에서 머물다 귀국하면서 몽골의 생활 양식을 들여왔다. 이는 초기에는 지배층을 중심으로 유행하였으나 점차 민간으로 확산되었다.

주요 사례

  1. 복식 및 장신구: 남성들 사이에서 머리 윗부분을 깎고 나머지를 땋아 내리는 변발이 행해졌으며, 여성들의 머리 장식인 족두리와 뺨에 붉은 점을 찍는 연지곤지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군복의 일종인 철릭과 허리에 매는 띠인 광다회 등도 몽골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식문화: 증류주인 소주의 제조법이 몽골군을 통해 한반도에 전래되었으며, 설렁탕의 기원에 대해서도 몽골의 육류 조리법과 연관 짓는 학설이 존재한다. 만두와 같은 밀가루 음식의 확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3. 언어: 몽골어의 유입으로 인해 '수라(임금의 음식)', '무수리(궁중 시종)', '보라매(사냥용 매)' 등 단어가 사용되었다. 또한 특정 직업군을 비하하거나 지칭할 때 쓰이는 접미사 '-치(장사치, 벼슬아치 등)' 역시 몽골어의 흔적으로 평가된다.
  4. 기타: 매사냥이 유행하였으며, 이를 관장하는 관청인 응방(鷹坊)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변화와 소멸

고려 말 공민왕은 반원 자주 정책을 추진하면서 몽골풍을 대대적으로 금지하였다. 공민왕은 스스로 변발을 풀고 몽골 복식을 벗음으로써 고려의 독자적인 풍습을 회복하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미 오랜 기간 정착된 일부 풍습과 어휘는 조선 시대를 거쳐 오늘날 한국 문화의 일부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관련 개념

원나라에서 고려의 의복, 음식, 풍습 등이 유행했던 현상은 '고려양(高麗樣)'이라고 부르며, 이는 몽골풍과 대비되는 문화 교류의 양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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