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인도 침공(Mongol invasions of India)은 몽골 제국 및 그 후계 칸국이 13세기 초부터 14세기 전반에 걸쳐 인도 아대륙, 주로 북서부 지역에 감행한 일련의 군사 침공·약탈 원정을 가리키는 역사 개념이다. 한국어권에서는 "몽골의 인도 원정"이라는 표현도 함께 쓰인다. 이 개념은 실재하는 역사적 사건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른바 유령 개념이나 신조어가 아니다.
개요
통상적으로 1221년부터 1327년까지의 기간이 이 침공의 시대로 제시된다. 초기 원정은 몽골 제국 본체의 군대에 의해, 후기의 대규모 침공은 주로 차가타이 칸국과 몽골계 카라우나(Qara'unas)족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서술이다. 침공의 주된 대상은 북인도를 지배하던 델리 술탄국이었으며, 몽골군이 인도 내륙으로 진격하여 델리 외곽에 도달하자 델리 술탄국은 이에 대항하는 군사 작전을 벌였다. 그 결과 몽골군은 여러 차례 심각한 패배를 겪었고, 델리 술탄국의 관리들은 몽골과의 전쟁을 술탄의 주요 임무 중 하나로 여겼다고 전해진다. 다만 몽골군의 규모, 각 전투의 세부 전개, 특정 원정의 정확한 연대 등에는 사료별 차이가 있어 확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배경
몽골 제국이 호라즘 왕조의 잘랄 앗딘을 추격하던 과정에서 인도 방면으로 진출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1221년 인더스강 전투 이후 몽골군은 라호르·물탄 일대를 공격하였고, 이후 카슈미르 지역이 몽골 세력의 영향권에 들어간 것으로 서술된다. 1241년에는 몽골군이 라호르를 함락시키고 철수하였다. 13세기 중반에는 몽골과 델리 술탄국 사이에 외교적 접촉과 화친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이 시기 일부 국경 지대가 몽골의 영향 아래 놓였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전개
13세기 후반부터 차가타이 칸국을 중심으로 대규모 침공이 반복되었다. 1290년대에는 잘랄웃딘 할지와 알라웃딘 할지 시기의 델리 술탄국이 여러 차례 몽골군을 격퇴하였다. 1299년에는 차가타이 칸국의 두와(Duwa)가 아들 쿠틀루그 쿠와자를 보내 델리를 공략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1303년에는 몽골군이 델리를 약탈하였으나 시리 요새를 함락하지 못하고 퇴각하였다. 1305년 암로하 전투와 1306년 라비강 유역 전투 등에서 델리 술탄국 군대가 몽골군을 격파한 것으로 전해진다. 1327년 차가타이 칸국의 타르마시린이 국경 도시들을 공격하고 델리를 포위한 것이 마지막 대규모 침공으로 언급되며, 이후에는 대규모 침공이 중단된 것으로 서술된다.
결과와 영향
일련의 침공은 결과적으로 델리 술탄국이 방어에 성공한 것으로 정리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북서부 국경 지대의 경제와 사회가 큰 타격을 입었고, 델리 술탄국은 요새 정비와 군사·재정 개혁을 통해 대응 체제를 강화하였다. 한편 델리 술탄국의 지배층 상당수가 투르크·몽골계 출신이었거나 몽골 세력과 군사적 인연을 가졌던 점이 지적되며, 연대기 사료가 이 갈등을 종교적 이분법으로 단순화한 측면도 논의된다. 몽골 세력은 이 지역을 완전히 정복하지는 못하였으나, 이후 티무르의 인도 침공과 무굴 제국의 성립 등 중앙아시아·몽골계 세력과 인도의 관계에 영향을 남겼다.
어원 및 명칭
이 명칭은 영어권 학술·백과사전에서 쓰이는 "Mongol invasions of India"(또는 "Mongol campaigns in India")의 한국어 역어로, 몽골 제국 및 후계 칸국이 인도 아대륙에 감행한 침공을 통칭하는 데에서 유래한다. 단일한 전쟁이 아니라 여러 시기에 걸친 복수의 원정을 묶어 부르는 명칭이라는 점에서 "침공"보다 "원정"이라는 표현이 쓰이기도 한다. 정확히 몇 차례의 원정을 이 명칭에 포함시키는지에 대해서는 학술적 합의가 단일하지 않다.
참고
이 항목의 서술은 한국어·영어 위키백과의 관련 문서 및 그곳에 인용된 2차 문헌(P. Jackson, 《The Delhi Sultanate》, K. S. Lal, 《History of the Khaljis》 등)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다. 세부 수치·연대·전투 전개 가운데 사료 간 불일치가 있는 부분은 단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