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몬테네그로의 역사

몬테네그로(몬테네그로어: Crna Gora / Црна Гора, '검은 산')는 발칸반도 서남부에 위치한 국가로, 그 역사는 고대 일리리아 왕국에서부터 현대의 독립 국가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변천을 겪어왔다.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인해 외세의 완전한 지배를 지속적으로 저항할 수 있었으며, 이는 몬테네그로의 독특한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고대

기원전 청동기 시대부터 현재의 몬테네그로 지역에는 일리리아(Illyria) 계통의 부족들이 거주하였다. 기원전 6~7세기경에는 그리스인들이 아드리아해 연안에 식민지를 건설하였고, 기원전 4세기경에는 켈트인들도 이 지역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3세기경에는 스쿠타리(오늘날의 슈코더르)를 수도로 하는 일리리아 왕국이 형성되었으나, 기원전 2세기 로마 공화정이 일리리아-로마 전쟁에서 승리한 후 이 지역을 정복하여 일리리쿰 속주에 편입시켰다. 이후 이 지역은 달마티아(Dalmatia)와 프라이에발리타나(Praevalitana) 속주로 나뉘어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 제국의 분할 이후에는 이 지역을 관통하는 경계선을 기준으로 서로마와 동로마(비잔틴), 라틴 교회와 그리스 교회의 영향권이 갈리게 되었다.

로마의 세력이 쇠퇴한 후, 5세기 말 고트족, 6세기 아바르족의 침략이 있었으며, 6~7세기경 슬라브인들이 대규모로 이주하여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중세

9세기경 슬라브인들은 두클랴(Duklja) 공국을 형성하였다.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의 선교 활동을 통해 이 지역은 기독교화되었다. 1042년, 스테판 보이슬라프(Stefan Vojislav)가 비잔틴 제국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켜 바르(Bar)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고, 이로써 두클랴는 독립을 쟁취하였다. 1077년 교황 그레고리오 7세는 두클랴를 독립국으로 승인하고 미하일로(Mihailo) 왕을 '두클랴의 왕'(Rex Doclea)으로 인정하였다. 두클랴는 미하일로(1046~1081)와 그의 아들 보딘(Bodin, 1081~1101) 치세에 전성기를 누렸으나, 12세기 이후 라슈카(Rascia) 대공들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다.

12세기 후반부터 약 1360년까지 이 지역(제타, Zeta)은 네마니치(Nemanjić) 왕조의 지배 아래 있었다. 14세기 후반에는 발시치(Balšić) 가문(1356~1421)이 제타를 통치하였고, 이후 츠르노예비치(Crnojević) 가문(1451~1496)이 뒤를 이었다. 츠르노예비치 왕조 시대에 이 지역은 '츠르나고라(Crna Gora)' 또는 베네토어로 '몬테네그로(Monte Negro)'라고 불리기 시작하였다. 츠르노예비치 가문은 오스만 제국에 밀려 코토르 만 상류의 체티네(Cetinje) 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겨 수도와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한편, 아드리아해 연안 지역은 1420년부터 1797년까지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코토르(Kotor) 주변 지역은 '베네치아 알바니아(Venetian Albania)'의 일부가 되었다.

근세: 오스만 제국과 독립 투쟁 (1496~1878)

1496년 오스만 제국이 제타 지역을 정복하여 몬테네그로 산자크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몬테네그로의 산악 지역은 오스만의 직접적인 통치를 효과적으로 거부하였고, 1516년부터 블라디카(vladika, 주교 겸 군주)가 선출되어 신정 정치 체제를 운영하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명목상의 종주권을 주장하였으나, 몬테네그로의 산악 부족들은 실질적인 자치를 유지하였다.

16~17세기 동안 몬테네그로인들은 오스만 제국에 맞서 수차례 전투를 벌였다. 1604년 레슈코폴레(Lješkopolje) 전투, 1613년 아르슬란 파샤의 대규모 침공을 격퇴하는 등 열세의 병력으로도 승리를 거두었다. 1614년 베네치아 귀족 마리아노 볼리차(Mariano Bolizza)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구몬테네그로(Old Montenegro)의 전투 가능 남성 인구는 총 8,027명에 불과하였다.

1696년부터는 페트로비치-녜고시(Petrović-Njegoš) 가문이 블라디카 자리를 세습하게 되었다. 19세기 전반의 블라디카 페타르 페트로비치 녜고시(Petar Petrović Njegoš)는 몬테네그로 역사와 문화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몬테네그로 공국 및 왕국 (1852~1918)

1852년, 다닐로 페트로비치 녜고시(Danilo Petrović Njegoš)는 결혼과 함께 주교직을 포기하고 세속 군주인 크냐즈(대공) 다닐로 1세를 자칭하며 몬테네그로 공국을 선포하였다. 1860년 다닐로 1세가 암살된 후 니콜라 1세(Nicholas I)가 즉위하였다.

1877~78년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몬테네그로는 오스만 제국과 다시 전쟁을 벌였고, 러시아의 지원 아래 승리하였다. 1878년 베를린 조약으로 몬테네그로는 국제적으로 독립 국가로 승인되었으며, 영토도 약 4,900km² 확장되었다. 1905년 니콜라 1세는 첫 헌법을 제정하였고, 1910년 몬테네그로는 왕국으로 승격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유고슬라비아 편입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 편에 서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선전포고하였다. 1916년 1월, 몬테네그로는 중앙유럽 열강(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불가리아)에 의해 점령되었다. 니콜라 1세는 이탈리아로 망명하였다.

전후인 1918년 11월, 포드고리차 국민의회(Podgorička skupština)는 니콜라 1세를 폐위시키고 몬테네그로가 세르비아 왕국에 합병될 것을 결정하였다. 이에 반발한 군주제 지지 세력은 1919년 1월 크리스마스 봉기(Christmas Uprising)를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몬테네그로는 이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1929년 이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중 1941년 이탈리아가 몬테네그로를 점령하였고,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괴뢰 국가인 '몬테네그로 왕국'이 세워졌으나 실질적인 지배력은 미약하였다. 1943년 9월 이탈리아가 항복한 후에는 나치 독일이 점령을 대체하였다. 이 시기 몬테네그로에서는 체트니크(Chetnik, 왕당파)와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공산주의 저항군) 간의 내전이 발생하였다. 1944년 12월 포드고리차가 파르티잔에 의해 해방되었고, 전후 요시프 브로즈 티토는 몬테네그로를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구성하는 6개 공화국 중 하나로 승인하였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공화국 시기 (1945~1992)

몬테네그로 사회주의 공화국은 유고슬라비아 연방 내 최소 인구의 공화국이었다. 연방 정부의 지원으로 경제적 재건과 산업화가 추진되었다. 수도는 체티네에서 포드고리차로 이전되었고(이 기간 동안 티토그라드로 개명), 바르 항구 재건, 니크시치-티토그라드 간 철도 건설, 알루미늄 제련소 건설 등이 이루어졌다. 1990년대 초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몬테네그로의 정치 지도부(밀로 주카노비치, 모미르 불라토비치, 스베토자르 마로비치)는 친세르비아 노선을 취하였다.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및 세르비아-몬테네그로 (1992~2006)

1992년 4월 국민투표 이후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함께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FRY)을 구성하였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전쟁 동안 몬테네그로는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공격에 참여하는 등 밀로셰비치 정권의 전쟁 수행을 지지하였다. UN의 경제 제재 속에서 몬테네그로는 밀수 경로의 거점이 되기도 하였다.

1997년 밀로 주카노비치와 모미르 불라토비치 간의 대통령 선거 분쟁 이후, 주카노비치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로부터 점차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다.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 NATO의 유고슬라비아 공습에서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보다 피해가 적었다. 2003년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은 '세르비아-몬테네그로'로 국명을 변경하고 느슨한 연합 체제로 재편되었다.

독립 이후 (2006~현재)

2006년 5월 21일 실시된 독립 국민투표에서 55.5%의 찬성(당시 EU가 요구한 기준선 55%를 간신히 상회)으로 독립이 가결되었고, 몬테네그로는 6월 3일 독립을 선언하였다. 6월 28일 유엔(UN) 제192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였다.

2017년 6월, 몬테네그로는 NATO의 29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러시아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2016년 10월 총선일에는 친러 세력에 의한 쿠데타 미수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2020년 8월 총선에서 밀로 주카노비치의 민주사회당(DPS)은 30년 만에 패배하였고, 친세르비아 성향의 정권이 수립되었으나 14개월 만에 불신임으로 붕괴되었다. 2023년 4월 대통령 선거에서 유럽 나우(Europe Now) 운동의 야코프 밀라토비치가 당선되어 대통령에 취임하였고, 2023년 6월 조기 총선에서도 유럽 나우 운동이 승리하였다. 2023년 10월 밀로이코 스파이치가 총리로 취임하면서 친유럽 및 친세르비아 계열 정당들의 연립 정부가 구성되었다.

몬테네그로는 2023년 현재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요소를 결합한 정치 체제 아래에서 유럽 연합(EU) 가입을 주요 외교 정책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