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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행선

목행선(睦行善, 1609~1661)은 조선 후기 인조~효종 시기에 활동한 문신이다. 본관은 사천(泗川)이며, 자는 행지(行之), 호는 남간(南磵)이다. 이조참판 목첨(睦詹)의 손자이며, 호조참판 목장흠(睦長欽)의 아들로 태어나 숙부인 공조참의 목대흠(睦大欽)에게 입양되었다.

1630년(인조 8)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33년(인조 1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예조좌랑 겸 기사관(禮曹佐郞兼記事官), 지제교(知製敎) 등을 거쳐 국사 편찬에 참여하였다. 병조좌랑을 거쳐 경기도도사(京畿道都事)로 재임하던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비빈과 왕자, 사대부 및 백성들의 강화도 피난을 주선하고 진휼 활동을 펼쳐 공을 세웠다. 이후 홍문관수찬(修撰), 사헌부지평(持平), 사간원헌납(獻納), 홍문관교리(校理), 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649년(인조 27)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성균관대사성(大司成), 사간원대사간(大司諫), 승지(承旨), 예조참의(禮曹參議) 등을 거쳐 1653년(효종 4)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에 임명되었다. 1654년 사간원정언(正言), 1655년 승정원 승지를 역임하였다. 이후 중풍으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1661년(현종 2) 윤7월 26일 사망하였다. 향년 53세이다.

성품이 돈독하고 후덕하며 아량이 많았다고 전해지며, 허목(許穆)이 묘갈명(墓碣銘)을 지었다. 묘소는 경기도 동두천시 지행동에 위치해 있으며, 동두천시 향토유산 제2호(목행선 선생 묘역)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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