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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역사

목포의 역사는 대한민국 전라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 목포의 형성과 변천 과정을 다룬다. 목포는 지리적으로 영산강 하구에 위치하여 고대부터 해상 교통과 교역의 요충지로 기능해 왔으며, 특히 1897년 개항 이후 근대적 도시로 급속히 발전하였다.

선사 및 삼국 시대

목포 지역에는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검(동검)이 시 부근에서 출토된 점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삼한 시대에는 마한의 세력권에 속해 있었으며, 삼국 시대에는 백제의 영역으로 편입되어 물아혜군(勿阿兮郡)으로 불렸다. 이후 신라 경덕왕대에는 무주(武州)에 속하였다.

고려 시대

고려 혜종 3년(946년)에 물량군(勿良郡)으로 개편되었다가, 성종 6년(995년)에는 해양도 나주목 무안현으로 개편되었다. 고려 말에는 나주 수진(水鎭)이 외방으로 나오면서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후삼국 시대에는 왕건이 견훤의 후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목포에 도착하여 나주 지역을 복속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장화왕후를 만나 혼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시대

조선 시대에 들어 목포진(木浦鎭)이 설치되었다. 세종 21년(1439년)에는 목포 수군만호진(水軍萬戶鎭)이 별도로 설치되어 인근 연안의 12개 도서를 관할하게 하였다. 현재의 만호동은 이 만호진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 이후 군선 재정비와 군량미 확보를 위해 목포와 고하도 앞에 수군진을 설치하고 108일간 머무른 기록이 있다.

1895년(고종 32년) 무안군에서 분리되어 독립하였으며, 1897년 10월 1일(광무 원년) 개항장으로 지정되어 무안항 또는 목포부로 불리게 되었다. 목포만호는 진영 소재지의 일반 행정도 관장하였으며, 직접 관할 구역은 관해, 용당, 산정, 죽교(쌍교), 목포의 5개 구역이었다. 개항 이후 일본을 비롯한 영국, 미국 등 외국인의 거주와 무역이 허용되었다.

개항과 근대

목포의 개항은 1897년 10월 1일로, 인천(1883년)보다는 늦었으나 부산과 인천을 제외하면 가장 이른 시기의 개항이었다. 개항의 배경에는 지리적 요인이 작용하였는데, 목포는 일본 후쿠오카나 나가사키에서 중국 대륙을 잇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였고, 호남 평야의 곡창지대에서 생산되는 물산을 집결·유통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개항 이후 일본인 거류지가 유달동 일대에 형성되었으며, 국권 침탈 전에는 일본 영사관이 유달동 인근에 설치되었다. 1898년부터 1903년까지는 목포 부두 노동자들이 일본인 자본가에 대항하여 동맹파업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1905년 이후에는 유곽(遊廓)이 들어서기 시작하였고, 일본인 거주지는 금화동(사쿠라마치)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일제강점기

1910년 국권 침탈 이후 무안부에서 목포부(木浦府)로 개칭되어 19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4년 호남선 철도가 개통되어 대전-목포 간 철로가 개설되었고, 같은 해 4월 1일 목포부가 분해되어 도시 지역인 부내면만 목포부로 남고 나머지 지역은 무안군으로 개편되었다.

일제강점기 동안 목포는 곡물 수탈의 전진 기지로서 기능하였다. 1920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 설치되었으며(현재 목포근대역사관으로 사용), 목포항은 김(一黑), 면화·쌀·소금(三白)의 집산지로 널리 알려졌다. 1930년대 초에는 목면공장이 20여 곳에 이르러 조선 제일의 목면 수출항으로 성장하였다. 1932년에는 무안군 일부 지역을 편입하여 인구 6만의 조선 6대 도시로 성장하였다.

광복 이후

1949년 8월 15일 지방자치법 시행에 따라 목포부에서 목포시(木浦市)로 개칭되었다. 1952년 4월 25일 제1회 지방선거를 통해 시의회가 구성되고 민선 시장이 선출되었다.

이후 목포시는 지속적으로 행정 구역이 확장되었다. 1963년 무안군 이로면 일부를 합병하였고, 1973년과 1987년에도 무안군 지역을 추가 편입하였다. 1999년 하당신도심 2단계 매립지구 택지개발사업 등을 통해 면적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현재 총면적은 약 51.58㎢에 이른다.

삼학도는 1940년대 목포 앞바다에 있던 섬이었으나 1968년부터 1973년까지 추진된 간척 공사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이후 2000년부터 복원 사업이 추진되어 2006년 소삼학도가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었고, 2007년 3월 1일부터 일반에 개방되었다.

2004년 4월 1일 KTX가 개통되어 호남선의 종착역으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서해안고속도로(1998년 개통), 목포 신항, 무안 국제공항 등 사회기반시설이 확충되었다. 또한 대불·삼호공단 조성, 남악신도시 개발, 원도심 개발(대성지구, 백련지구, 서산-온금지구 등)이 진행되었다.

지명 유래

목포(木浦)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나주의 남쪽 포구(南浦)라는 의미에서 '남포→맑포→목포'로 변천되었다는 설이다. 둘째는 지형이 목(목)처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여 '목개'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여 목포가 되었다는 설로, 이 설이 더 유력하게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목포 입구에는 '큰목(대항)', '작은못(소항)'이라는 지명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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