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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책

목책(木柵)은 나무 기둥을 땅에 박아 연결하여 만든 방어 시설 또는 울타리를 의미한다. 한자 '木'(나무 목)과 '柵'(울타리 책)의 결합으로, 문자 그대로 '나무 울타리'라는 뜻이다.

목책은 주로 청동기 시대부터 마을 방어를 위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한국고고학사전에 따르면, 목책은 마을 주위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 기둥을 박아 서로 연결하여 만든 담으로, 청동기 시대의 목책은 기원전 9~6세기의 송국리 문화 시기와 기원전 5~3세기의 덧띠토기 문화 시기에 주로 축조되었다. 목책만 단독으로 설치된 경우도 있지만, 환호(環濠, 마을 주위를 판 도랑)와 함께 사용되거나 토루(土壘, 흙으로 쌓은 둑)와 병용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부여 송국리 유적이 널리 알려져 있다. 1992년과 1993년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송국리 유적의 목책은 기둥 구멍이 방형과 원형이었으며, 대형 목책 구멍의 경우 폭 약 1.5m, 깊이 약 1m 전후였고 기둥 사이 간격은 1~2m였다. 다만 2008년 이후 추가 발굴에서 일부는 방어용 목책이 아니라 대형 지상 건물이나 의례 관련 시설물로 밝혀지는 등 성격 재해석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sillokwiki(조선왕조실록사전)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목책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만든 성(城)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급히 방어시설을 만들거나 임시로 성을 쌓을 경우, 또는 대량의 노동력을 확보할 수 없는 변방이나 도서(島嶼) 지방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한국의 성곽은 토성(土城)과 석성(石城)이 흔히 알려져 있으나, 목책으로 울타리를 만드는 사례도 많았다.

문헌 기록상으로는 『삼국지』 「위서」 부여조에 "성책(城柵)은 둥글게 만들어 마치 감옥과 같다"는 기록이 있어 부여에서 방어 목적으로 목책을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삼국사기』에는 고구려·백제·신라에서 모두 목책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대 시기의 목책 관련 사료는 많지 않아 구체적인 사실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목책에 관한 비교적 많은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실록에 언급된 목책은 동해안 2개, 남해안 6개, 서해안 1개, 두만강 연변 21개, 압록강 연변 33개, 내지 6개로 총 69개가 확인된다. 이 중 15세기(특히 세종대)에 집중적으로 설치되었는데, 이는 4군 6진 설치라는 영토 확장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목책은 가공이 쉬운 나무를 이용해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습기나 충해, 기후 변화로 인한 부식 문제와 화공(火攻) 및 투석기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어 이후 방어 시설의 재료는 돌이나 벽돌, 흙으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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