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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흥갑

모흥갑(牟興甲)은 조선 후기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으로, 판소리 8명창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의 생졸 연도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평택시사에서는 1820년에서 1890년으로 기록하고 있는 반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서는 생졸년 미상으로 보고 있다. 순조·헌종·철종 대에 걸쳐 송흥록(宋興祿), 염계달(廉季達) 등과 함께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출생지에 대한 기록

모흥갑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존재하여 확실하지 않다. 경기도 안성의 죽산(竹山) 출신이라는 설, 경기도 진위(振威, 현 평택 일대) 출신이라는 설, 전라도 전주 출신이라는 설이 있다. 다만 그가 말년에 전주에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음악적 특징과 활동

모흥갑은 '고동상성(鼓動上聲)'이라 하여 높고 우렁찬 소리를 잘 질러내는 명창으로 알려져 있다. 후세 사람들은 그의 소리를 두고 '설상(雪上)에 진저리친 듯'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고종으로부터 동지(同知)의 관직을 제수받았다고 전해지며, 평양감사의 초청으로 평양 연광정(練光亭)에서 소리를 할 때 그 소리가 10리 밖까지 들렸다는 일화가 있다. 이때의 판소리 공연 장면을 그린 그림이 서울대학교 도서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는 판소리 공연 장면을 그린 가장 오래된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레퍼토리와 더늠

모흥갑은 「적벽가(赤壁歌)」와 「춘향가」를 특히 잘 불렀으며, 당시 「적벽가」로는 그를 따를 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의 더늠(특유의 음악적 장기)으로 전해지는 「춘향가」 '이별가' 중 '날 데려 가오' 대목은 높은 소리를 계속 질러내는 고동상성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것으로 평가된다. 신재효(申在孝)는 「광대가(廣大歌)」에서 모흥갑의 소리를 학의 울음소리에 비유하여 평하였다.

기록과 관련 문헌

모흥갑은 이른 시기의 판소리 명창 가운데 기록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신위의 「관극시(觀劇詩)」, 송만재의 「관우희(觀優戱)」, 윤달선의 「광한루악부」, 이유원의 「임하필기」, 이건창의 「이관잡지」, 신재효의 「광대가」 등 다양한 문헌에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도 그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 실려 있다.

말년과 후대 영향

모흥갑은 말년에 이가 빠져 소리를 입술로 조정하여 불렀다고 하며, 이것이 그의 독특한 순음(脣音) 더늠으로 후대의 주덕기(朱德基)에 의해서 방창(倣唱)되어 세상에 퍼졌다고 전해진다. 일화에 따르면, 말년에 전주 시장에서 자신의 수행고수였던 주덕기가 공개 자리에서 송흥록을 폄하하는 말을 한 것을 듣고, 모흥갑이 그를 꾸짖으며 자신의 장기인 「춘향가」 '이별가'를 불러 주덕기가 사죄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상과 같이, 모흥갑은 한국 판소리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지닌 명창으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위키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공신력 있는 여러 자료에서 확인되는 실제 역사적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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