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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마드 호다반다

모하마드 호다반다(Mohammad Khodabanda, 1532~1596)는 사파비 왕조(Safavid dynasty)의 제4대 샤(Shah)이다. 페르시아어 이름은 محمد خدابنده로, '하나님의 종'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1578년 즉위하여 1587년까지 재위하였으며, 아들 아바스 1세(Abbas I)에게 왕위를 찬탈당했다.

생애 및 배경

1532년 타브리즈에서 타흐마스프 1세(Tahmasp I)와 투르코만 출신 어머니 술타눔 베굼 마우실루(Sultanum Begum Mawsillu) 사이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사파비 제국의 건국자 이스마일 1세(Ismail I)이다. 어린 시절 눈병을 앓아 거의 실명할 지경에 이르렀으며, 이로 인해 왕위 계승 경쟁에서 한동안 배제되었다.

1576년 아버지 타흐마스프 1세가 사망하자 동생 이스마일 2세(Ismail II)에게 왕위를 빼앗겼으나, 이스마일 2세가 1577년 독살된 후 유일한 계승자로서 키질바시(Qizilbash) 부족의 후원을 받아 1578년 샤로 즉위하였다.

통치

호다반다의 재위 기간은 왕권이 약화되고 사파비 제국이 내부 분열과 외부 침략에 시달린 시기였다. 재위 초기에는 그의 아내 카이르 알 니사 베굼(Khayr al-Nisa Begum)이 실질적인 통치자 역할을 수행했으나, 키질바시 부족의 반발로 1579년 암살당했다. 이후 키질바시 부족 간의 파벌 싸움이 심화되었고, 각 부족은 호다반다의 아들들을 각각 지지하며 대립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 무라드 3세(Murad III)가 1578년부터 사파비 영토를 침공하기 시작하여, 조지아와 쉬르반(Shirvan) 일대를 상실하였고, 1585년에는 옛 수도 타브리즈(Tabriz)가 오스만 제국에 함락되었다. 또한 우즈베크 족이 호라산(Khorasan) 지역을 침략하는 등 국경 전역에서 위기를 맞았다.

폐위와 말년

1587년, 키질바시 우스타일루(Ustajlu) 부족의 지도자 무르시드 쿨리 한(Murshid Quli Khan)이 호다반다의 아들 압바스 미르자를 새로운 샤로 추대하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호다반다는 별다른 저항 없이 폐위를 받아들였으며, 이후 알라무트(Alamut) 성에 유폐되었다. 1595년에서 1596년 사이 카즈빈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된다.

문화적 측면

호다반다는 '파흐미(Fahmi)'라는 필명으로 시를 썼던 시인이기도 하며, 예술과 문화에 조예가 깊었던 인물로 평가된다. 그러나 통치자로서는 나약하고 결단력이 부족하여 재위 기간 내내 실권을 장악하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사파비 제국은 큰 혼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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