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포투쟁(영어: blanket protest)은 북아일랜드 분쟁(The Troubles) 당시 메이즈 교도소(HM Prison Maze)에 수감된 아일랜드 공화국군 임시파(PIRA) 및 아일랜드 민족해방군(INLA) 요원들이 벌인 5년간의 옥중 시위 중 첫 번째 단계이다.
배경
북아일랜드 분쟁에 연루된 아일랜드 공화주의 운동가들은 본래 영국 정부의 '특수범주지위(Special Category Status)'에 의해 정치범으로 대우받고 있었다. 그러나 1976년부터 영국 정부가 이 제도를 폐지하면서 해당 수감자들은 일반 잡범(일반 범죄자)과 동일한 처우를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들은 일반 범죄자용 죄수복을 착용할 것을 요구받았고, 수감자들은 자신들을 일반 범죄자와 동일시할 수 없다며 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전개
모포투쟁은 1976년 9월 14일, 아일랜드 공화국군 임시파 대원이었던 키어런 누겐트(Kieran Nugent)가 죄수복 착용을 거부하면서 시작되었다. 누겐트는 무기 소지 및 차량 탈취 혐의로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수감 이틀째, 그에게는 잠잘 때 덮는 모포(blanket) 한 장이 지급되었고, 그는 죄수복 대신 이 모포를 몸에 두르고 생활했다. 이후 체포되어 입소하는 다른 수감자들도 이에 동참하였다.
처음에는 모포를 두르는 행위가 허용되었으나, 교도소 측은 점차 이를 금지하고 모포마저 빼앗으려 하였다. 교도소 규칙에 따르면 수감자들은 감방 밖으로 나올 때 반드시 죄수복을 입어야 했으므로, 죄수복 착용을 거부하면 감방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교도소 측의 대응과 시위의 심화
교도소장은 시위 중인 수감자들에게 2주마다 죄수복을 입으라고 명령했고, 수감자들은 이를 계속 거부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교도소 측은 시위자들의 감방 내 가구를 모두 빼앗고, 열악한 식사(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차, 묽은 죽, 마른 빵 등)를 제공하였으며, 수감 생활에 따라 적용되던 감형을 취소하고 외부인 면회(월 4회 가능)도 금지하였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1978년 3월, 교도관들의 폭행 사건을 계기로 수감자들은 모포투쟁에서 더욱 극단적인 형태인 불결투쟁(Dirty Protest)으로 시위 방식을 전환하게 되었다. 불결투쟁에서는 수감자들이 감방 안에서 배설물을 처리하지 않고 벽에 바르는 등의 방식으로 항의를 이어갔으며, 이는 이후 1981년 아일랜드 단식투쟁(Irish Hunger Strike)으로까지 이어졌다.
의의
모포투쟁은 북아일랜드 분쟁사에서 죄수들의 정치범 지위 인정 요구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며, 이후 단식투쟁을 거쳐 국제적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위는 영국 정부의 북아일랜드 정책에 대한 아일랜드 공화주의 수감자들의 조직적 저항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