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야마씨(本山氏, もとやまし)는 일본의 씨족(氏族)으로, 주로 도사국(土佐国, 현재의 고치현)을 본거지로 한 호족이다. 도사 칠웅(土佐七雄)의 하나로 꼽히며, 센고쿠 시대(戦国時代)에 도사 지역에서 세력을 떨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 및 연원
모토야마씨의 출자(出自)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존재한다. 하나는 야기씨(八木氏) 계통으로, 헤이안 시대 중기인 10세기에 기노 쓰라유키(紀貫之)가 저술한 《도사일기(土佐日記)》에 이미 '야기 야스노리(八木康教)'라는 인물이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도사 국인(土佐国人)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다른 설로는 세이와 겐지(清和源氏)의 지류인 기라씨(吉良氏)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주장도 있으며, 도사 국조(都佐国造)의 후예라는 설도 존재한다.
본관(本貫)은 도사국 나가오카군(長岡郡) 모토야마(本山, 현재의 고치현 나가오카군 오토요정 일대)이며, 이 지역의 지명을 씨성(氏姓)으로 삼았다. 《도사모노가타리(土佐物語)》에는 본거지가 "국내 제일의 요새"라고 기록될 정도로 난공불락의 산악 지대였으나, 영지의 대부분이 산간부에 위치하여 경제적으로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센고쿠 시대의 흥망
모토야마 씨는 아와(阿波)의 오가사와라 씨(小笠原氏)와 항쟁하며 모토야마 지역의 지배권을 확립하고, 주변 호족들과 연대하여 기반을 다졌다. 16세기 전반, 모토야마 무네무네(本山茂宗, 1508~1555)는 남하하여 아사쿠라성(朝倉城)을 축성하고 평야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전성기에는 도사 서부의 국사(国司)인 도사 이치조 씨(土佐一条氏)를 별도로 하더라도, 도사에서 가장 유력한 다이묘(大名)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인접 세력인 조소카베 씨(長宗我部氏)가 세력을 키우면서 충돌이 발생하였다. 조소카베 구니치카(長宗我部国親)는 일단 모토야마 씨에게 복종하는姿态를 보이며 힘을 비축하였고, 이치조 씨의 중재로 구니치카의 딸이 모토야마 씨의 적남 모토야마 시게토키(本山茂辰)의 정실로 들어가면서 한동안 소강 상태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에이로쿠 3년(1560년) 나가하마(長浜) 전투를 기점으로 모토야마 씨의 세력은 급속히 약화되었고, 에이로쿠 6년(1563년) 아사쿠라성과 기라성을 포기하고 모토야마로 퇴각하였다. 이후 모토야마성마저 버리고 우리우노(瓜生野)까지 후퇴하였으며, 에이로쿠 말기에는 조소카베 모토치카(長宗我部元親)에게 항복하였다.
항복 후 모토야마 사다시게(본명 모토야마 지카시게, 本山親茂)는 조소카베 가문의 일문중(一門衆)에 편입되어 조소카베 노부치카(長宗我部信親)의 가로(家老)로 섬겼다. 이후 규슈 정벌 때인 1587년 헤쓰기가와 전투(戸次川の戦い)에서 노부치카와 함께 전사하였다.
에도 시대 이후
에도 시대에 들어서는 야마우치 가문(山内家)의 가신으로 편입되어 번사(藩士)로서 존속하였다. 현재 일본 전역에 약 20,000명 정도의 '모토야마(本山)' 성씨 인구가 분포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나가사키현, 도쿄도, 구마모토현, 후쿠오카현 등에 비교적 많이 분포한다.
관련 단체 및 기업
'모토야마(本山)'라는 명칭은 성씨 외에도 기업명 등으로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1924년 창업한 밸브 제조 기업인 주식회사 모토야마 제작소(株式会社本山製作所, 미야기현)와 열처리 장비 등을 취급하는 주식회사 모토야마(株式会社モトヤ마, 오사카부) 등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