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용수(慕容垂, 326년 ~ 396년)는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五胡十六國時代) 후연(後燕)의 초대 황제이다. 성무제(成武帝) 시호를 받았으며, 본명은 모용패(慕容霸)이다. 자는 도명(道明) 또는 숙인(叔仁)이며, 선비족 출신으로 아명 겸 선비명은 아륙돈(阿六敦, Altun)이다.
출신과 초기 생애
모용수는 전연(前燕)의 초대 황제인 모용황(慕容皝)의 다섯째 아들로 창려군(昌黎郡) 극성현(棘城縣)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아버지 모용황의 총애를 받았으며, 모용황은 그를 태자로 세우려고 시도하기도 하였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각지의 정벌에 종군하며 군사적 공적을 쌓았다.
전연 시기의 활약과 망명
모용수는 전연의 황족으로서 동진(東晉)의 환온(桓溫)이 이끄는 북벌군을 격퇴하는 등 주요한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형 모용각(慕容恪)이 사망한 이후, 숙부인 섭정 모용평(慕容評)과 태후의 견제를 받았다. 환온의 북벌을 물리친 공로로 명성이 높아졌지만, 이에 위협을 느낀 모용평과 태후가 암살을 모의하자, 모용수는 369년경 전연을 탈출하여 전진(前秦)으로 망명하였다.
전진에서 모용수는 황제 부견(苻堅)의 신뢰를 받으며 장수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383년 부견이 비수대전(淝水大戰)에서 대패하여 전진의 세력이 와해되자, 모용수는 이 틈을 타 독립을 도모하였다.
후연 건국과 치세
384년 1월 모용수는 연왕(燕王)을 자칭하며 후연을 건국하였다. 이후 국호를 연(燕)이라 하였으나, 동시대에 같은 이름의 나라가 여러 개 존재하여 후세 역사가들은 이 나라를 후연이라 구분하여 칭한다. 386년 정월에는 황제로 즉위하였고, 수도를 중산(中山, 지금의 허베이성 정저우)에 두었다.
모용수의 치세 동안 후연은 북방 일대에서 세력을 확장하였다. 392년 정령족(丁零族) 적교(翟釗)의 적위(翟魏)를 멸망시켰고, 394년에는 서연(西燕)을 멸망시켜 화북 일대를 평정하였다. 동진과는 주로 산동 지방에서 충돌하여 산동반도 대부분을 장악하였다.
한편 탁발부(拓跋部)의 내전에 개입하여 탁발규(拓跋珪)를 지원한 것은 이후 북위(北魏)의 성장을 초래한 결과를 낳았다. 북위가 성장하자 위협을 느낀 모용수는 395년 태자 모용보(慕容寶)를 보내 북위를 공격하였으나, 참합피(參合陂) 전투에서 탁발규에게 대패하여 대규모 병력 손실을 입었다. 이에 모용수는 396년 직접 군대를 이끌고 북위를 공격하여 평성(平城)을 점령하는 등 초기에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이전 전투에서 학살당한 군대의 유골을 보고 충격을 받아 병을 얻었다. 결국 북위 정벌을 완수하지 못한 채 회군 도중 진중에서 사망하였다.
평가
모용수는 중국사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군사적 능력 자체는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지만, 은혜를 입었던 전진의 부견을 배반하고 독립한 일로 인해 역사적으로 반역자라는 평판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그가 사망한 직후 후연이 북위에 크게 패배하면서, 그가 나라의 건전한 기반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고 후계자 선정에 실패하였다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관련 문헌
모용수에 대한 주요 사료로는 《진서(晉書)》와 《자치통감(資治通鑑)》이 있으며, 각종 중국 고대 사료 데이터베이스와 한국 고대 사료 DB에서도 그 행적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