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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군왕

명주군왕(溟州郡王)은 신라 하대(下代)의 왕작(王爵)으로, 봉작지는 명주(溟州, 현재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일대)이다. '명원군왕(溟源郡王)'으로도 표기된다.

역사적 배경

785년 선덕왕 김양상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왕위 계승권을 두고 무열왕계의 김주원(金周元)과 내물왕계의 김경신(金敬信)이 다투었으나, 김경신이 추대되어 원성왕(元聖王, 재위 785~798)으로 즉위하였다. 왕위 계승전에서 패배한 김주원은 명주 지역으로 퇴거하였다. 원성왕은 왕권을 안정시키고 김주원 세력을 회유하기 위해 786년(원성왕 2) 김주원을 명주군왕에 책봉하고, 명주·익령(翼嶺, 현재의 양양)·삼척(三陟)·근을어(斤乙於, 현재의 평해)·울진(蔚珍) 등을 식읍(食邑)으로 하사하였다.

성격과 위상

명주군왕은 단순한 명예 작위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지배 권한을 수반하였다. 김주원 세력은 명주 지역에 성을 축조하고 치소(治所)를 마련하였으며, '명주군국(溟州郡國)'이라는 독자적인 국호를 사용하였다. 독자적인 통치 조직과 군사 기반을 갖추고 신라 북방 방어와 동해안 일대의 대외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학계에서는 이를 신라 중앙 정부와는 별도로 운영된 일종의 제후국적 성격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다만 일부 학자들은 이 작위가 실제로 공식적으로 내려졌는지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도 제시하고 있다.

세습과 변천

명주군왕의 지위는 김주원의 직계 자손에게 세습되었다. 김주원의 아들 김종기(金宗基)가 명주군왕을 이었고, 김종기의 아들 김정여(金貞茹)는 명원공(溟源公)에 책봉되었으며, 김정여의 아들 김양(金陽, 808~857)은 사후 명원군왕(溟源郡王)으로 추봉되었다. 이후 명주 지역은 김주원계 후손들이 도독을 세습하며 반독립적 호족 세력으로 존속하였고, 후삼국 시대에는 김순식(金順式) 등이 명주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였다. 작위의 공식적인 폐지 시점은 문헌상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현존 유적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는 명주군왕 김주원의 능묘(명주군왕릉)가 위치해 있으며,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묘비에는 '명주군왕김주원지묘(溟州郡王金周元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참고 문헌

  • 『삼국유사(三國遺事)』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위키백과 한국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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