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덕황후 이씨(明德皇后 李氏, 960년 ~ 1004년 4월 13일)는 중국 북송(北宋) 제2대 황제인 태종(太宗)의 황후이다. 성은 이(李)씨이며, 시호는 명덕(明德)이다.
출신 및 가문
명덕황후는 노주(潞州) 상당(上黨, 현재의 산서성 장즈시 일대) 출신이다. 아버지는 송나라의 개국공신이자 치주자사(淄州刺史)를 지낸 이처운(李處耘)이며, 어머니는 진씨(陳氏)이다. 이처운에게는 적실(嫡室)인 오씨(吳氏)와 측실인 진씨가 있었는데, 명덕황후는 진씨 소생의 둘째 딸이었다.
황후 책봉 이전
북송 태조 조광윤(趙匡胤)이 동생 조광의(趙光義, 후일 태종)가 상처(喪妻)하자, 이씨를 조광의와 혼인하게 하여 진왕비(晉王妃)로 삼았다. 이후 조광의가 태종으로 즉위하고 3년이 지난 978년(태평흥국 3년)에 입궁하였다.
황후 시절
984년(옹희 원년) 12월, 정식으로 황후에 책봉되었다. 사서에 따르면 이황후는 단정하고 예의가 바르며 인자하고 관대한 성품이었다고 전해진다. 태종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으나 일찍 요절하였다. 996년(지도 2년), 이황후는 적모인 오씨를 위국태부인(衛國太夫人)으로, 생모인 진씨를 한국태부인(韓國太夫人)으로 각각 봉하게 하였다.
황태후 시절
997년 태종이 붕어하고 진종(眞宗)이 즉위하자, 이씨는 황태후(皇太后)로 존숭받았다. 처음에는 서궁(西宮)의 가경전(嘉慶殿)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이후 진종이 특별히 만안궁(萬安宮)을 지어주어 그곳에서 기거하였다. 진종은 태후 이씨에게 지극한 효성을 다하였는데, 태후가 병에 들자 손수 약을 달여 올렸으며 병세가 깊어지자 울음을 터뜨리고 상을 걸고 민간의 명의들을 수소문하기도 하였다.
사망 및 사후
1004년(경덕 원년) 3월 15일(음력), 만안궁에서 붕어하였다. 향년 44~45세였다. 시호는 명덕(明德)으로 추서되었으며, 태종의 능인 영희릉(永熙陵)에 합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