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면신례

면신례(免新禮)는 조선시대에 새로 관직에 임명된 신임 관원이 해당 관청의 정식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선배 관원에게 음식을 대접하거나 선배 관원이 내리는 각종 시련과 벌칙을 수행하는 통과의례적 절차를 가리킨다. 한자로 '면할 면(免)', '새로울 신(新)', '예도 례(禮)'를 쓴다. 동의어로는 면신(免新), 신면(新免)이 있으며, 허참례(許參禮)와 함께 거행되거나 혼용되기도 하였다.

기원 및 배경

면신례의 기원은 고려 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중기의 학자 이이(李珥)는 《석담일기(石潭日記)》에서 고려 말엽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여 급제자가 대부분 권문세족의 자제로 구성되자, 이에 분개한 기존 관료들이 이들의 오만한 기세를 꺾고 상하 위계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침학(侵虐)을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증언하였다. 다만 이이는 이에 대해 문헌상의 확실한 전거(傳)는 없다고 덧붙였다.

절차와 내용

과거에 급제한 신임 관원(신래, 新來)이 관청에 배속되면 먼저 허참례(許參禮)를 행하였다. 허참례는 해당 집단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받는 예식으로, 신임 관원이 선배 관원에게 음식을 성대히 준비하여 대접하는 절차였다. 이후 10여 일이 지난 뒤에 다시 면신례를 행하였으며, 이 절차가 끝나야 비로소 선배 관원과 동석(同席)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틀어 면신례라고 불렀다.

면신례 기간 동안 선배 관원들은 신참 관원에게 인격적 모독, 직무상 함정, 육체적 가혹 행위 및 구타 등 다양한 시련을 가하였다. 구체적으로는 갓을 부수고 옷을 찢으며 진흙탕에서 구르게 하는 행위, 얼굴에 낙서하기, 더러운 것을 만지게 한 후 그 물을 마시게 하는 행위 등이 포함되었다. 특히 무관(서반, 西班) 계열의 군영(軍營)에서는 면신의 시련이 더욱 혹독하여 간혹 사망하는 경우도 발생하였다.

면신례를 잘 치르면 선배 관원들로부터 재능과 인품을 인정받아 이후 관직 생활이 순탄하였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 멸시를 받아 견디기 어려웠다. 이에 신참 관원들은 허참례와 면신례를 성대히 베풀고 때로는 금품을 상납하기도 하였다.

폐해와 금지 조치

면신례는 성종대부터 그 폐해가 지적되기 시작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새로 소속된 사람을 침학(侵虐)하는 자는 장(杖) 60에 처한다."는 규정이 명시되었다. 중종 36년(1541년)에는 처벌이 장(杖) 100대로 강화되었고 상관까지 논죄(論罪)하도록 하였다. 숙종 20년(1694년)에는 비변사에서 면신금단절목(免新禁斷節目)을 정하여 각종 면신 관련 금품 수수를 엄격히 금지하고 위반 시 장 100대에 유배 3천 리에 처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강력한 금령에도 불구하고 면신례는 근절되지 않았으며, 조선 후기까지 각 관청에서 관행으로 지속되었다. 면신례는 처음에는 삼관(三館, 승문원·성균관·교서관)과 훈련원 등에서 시작되었으나 점차 각 관청 및 군영, 나아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면신례'
  • 표준국어대사전, '면신례'
  • 《조선왕조실록》 관련 기사
  • 《경국대전(經國大典)》
  • 《연려실기술(燃黎室記述)》
  • 《석담일기(石潭日記)》
  • 《용재총화(慵齋叢話)》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