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토디오스(그리스어: Μεθόδιος, 교회 슬라브어: Мефодий, 826년 ~ 885년 4월 6일)는 비잔티움 제국의 기독교 신학자이자 선교사이며, 대모라바 왕국의 대주교였다. 동생인 키릴로스(Κύριλλος, 826~869년)와 함께 슬라브족에 대한 선교 사업을 수행하여 "슬라브의 사도들"로도 불린다. 메토디오스라는 이름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남성 이름으로, "동행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생애 및 활동
메토디오스는 그리스 테살로니키의 비잔티움 제국 해군 제독 집안에서 태어났다. 슬라브족이 많이 거주하던 지역에서 근무하여 일찍부터 슬라브어에 능통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비티니아 올림푸스 산의 수도원에서 은거 생활을 하였다.
862년, 대모라바 왕국의 군주 라스티슬라프가 비잔티움 황제 미카일 3세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포티우스에게 사절을 보내 기독교 개종을 요청하였다. 이에 키릴로스가 선교사로 선정되었고, 864년 키릴로스는 수도원에 은거하던 형 메토디오스를 불러내어 두 형제는 함께 모라비아로 떠났다. 그곳에서 슬라브어로 성서를 번역하며 약 3년 반 동안 슬라브족 선교에 헌신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문자 체계가 없던 슬라브어를 표현하기 위해 키릴로스가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성서와 기도문을 번역하였다고 전해지나, 이 문자에 대한 학술적 논의는 지속되어 왔다. 전통적으로는 글라골 문자가 먼저 고안되었고 이후 키릴 문자가 발전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으나, 최근의 연구에 따라 해당 해석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로마 교회와의 관계
867년, 교황 니콜라오 1세가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 형제를 로마로 초청하여 슬라브어 전례 사용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듬해 형제는 로마에 도착하여 교황 하드리아노 2세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였고, 새로운 교황은 슬라브식 전례 사용을 공식 승인하였다.
869년 동생 키릴로스가 로마에서 사망한 후, 교황 하드리아노 2세는 메토디오스를 로마 교황 사절 겸 시르미움의 대주교로 임명하여 슬라브족 지역에 파송하였다. 그러나 이후 독일계 성직자들과 교회 관할권을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었다. 870년에는 독일교회 측으로부터 재판에 회부되어 슈바벤 지역 감옥에 수감되기도 하였으나, 교황 요한 8세의 중재로 석방되었다.
880년에는 슬라브어 전례 사용 문제로 이단 고발을 당해 로마에 소환되었지만, 교황 요한 8세에게 자신의 입장을 변론하여 슬라브어 전례 사용 승인을 얻어내었다.
사후 평가
메토디오스는 885년 4월 6일 모라비아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사후 교황 스테파노 5세는 슬라브어 전례 사용을 금지하였고, 메토디오스의 제자들은 추방되었다. 그러나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 형제는 슬라브 선교의 공로로 동방 정교회에서 즉각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1880년에 이르러 이들을 성인으로 추대하였고, 198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두 형제를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동방 정교회에서의 축일은 2월 14일이며, 로마 가톨릭교회에서의 축일은 5월 11일이다. 성공회에서도 이들을 성인으로 기념하고 있다.
메토디오스는 동시대와 이후 역사에서 동명의 인물이 여러 명 존재한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였던 메토디오스 1세(788/800~847년경)는 동방 정교회의 성인으로, 성화상 논쟁 당시 성상 숭배를 옹호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또한 3세기경 활동한 올림푸스의 메토디오스는 초기 기독교 신학자로서 오리게네스의 사상을 비판한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